대조적인 소설세계를 보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 두 편이 눈길을 끌고 있다.한강(30)씨의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 비평사)와 백민석(29)씨의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문학동네). 한씨의 소설이 전통적인 소설문법에 충실한 소설집이라면 백씨의 이번 장편은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과도한 폭력과 납치, 섹스 등 엽기적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내 여자의 열매'에는 96년 이후 발표한 중·단편 8편이 실려 있다. 슬픈 아름다움이라고 할만큼 시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삶의 고단함과 희망 없음이라는 주제를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작가가 창조해낸 등장인물의 삶은 고단한 일상과 절망을 반영한다.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퀵서비스맨이 책배달을 하다 만난 여자와 사랑하다 사소한 언쟁으로 파탄을 맞는 관계를 그린 '어느 날 그는'이나 남편의 몸에 있는 흉터때문에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점차 소원해지는 부부관계를 담은 '아기 부처', 실직한 아빠와 함께 도망간 엄마를 찾아다니는 아이의 심정을 그린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등이 그렇다.
표제작 '내 여자의 열매'에서도 이런 소설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사랑이 세상 끝까지 가는 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 한 여자가 결혼 후 남편과의 의사소통이 힘들어지면서 베란다에 나가 점차 식물이 되어간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하지만 작가는 베란다 천장을 뚫고 옥상 위까지 뻗어오르는 꿈을 꾸는 그녀를 통해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백씨의 '목화밭 엽기전'은 문예지 발표 때부터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 납치와 린치, 강간, 살상, 중독, 포르노그라피 등으로 가득찬 이 소설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정상적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부업에 열중하고 있는 대학강사와 수학과외선생 부부가 어린 사내아이를 납치해 포르노 비디오를 찍고, 살해하며 그 댓가로 업자로부터 돈을 받는다는 것이 대략적인 소설 줄거리다. 작가는 이들의 일탈된 행위를 통해 인간 윤리가 부재하는 세계를 그리는 한편 인간 생활의 윤리적 가능성 자체를 조롱한다. 야수적 본성을 가진 이들의 적나라한 모습은 동물로 가차없이 환원된 인간의 전체 모습이자 인간 사회의 황폐함을 상징한다.
악몽과도 같은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야수로 변한 인간들이 펼치는 괴기한 행각, 상식을 무참하게 전복시키는 장면 등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과연 무엇인지, 살 만한 것인지 연민의 감정을 갖고 되묻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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