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평화유지군은 있어도 평화는 없다-발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신 유고연방 사이에 벌어졌던 '발칸전쟁'이 24일로 일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분쟁의 씨앗이 됐던 코소보에서는 여전히 민족간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되정리하고 앞날을 짚어 보자.

▨화약고 코소보=유고연방 절대 권력자였던 티토(1892-1980)의 사망과 동구권 붕괴가 맞물리면서 발칸전쟁의 싹이 텄다. 민족주의가 발호, 갈등이 표면화됐다. 옛 연방을 구성했던 민족은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이슬람계,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 헝가리인 등 무려 8개.

이런 와중에 1989년에 세르비아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다음해에는 옛 연방이 해체됐다. 그리곤 1992년 세르비아.몬테네그로.코소보.보이보디나 등을 다시 합쳐 '신 유고연방'을 출범시켰다.

이 조치 이후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의 독립요구가 거세졌다. 1996년 결성된 코소보 해방군이 무장투쟁을 시작하고, 이에 세르비아가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인종청소'가 진행됐다. 여기에 NATO가 개입함으로써 발칸전쟁으로 확대된 것.

▨코소보의 비극사 =그러나 코소보 분쟁의 역사는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발칸반도를 지배하던 대(大)세르비아는 1389년에 터키군에 대패, 400여년간의 혹독한 이슬람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새 주인이 된 터키는 이슬람계 알바니아인을 코소보로 이주시켜 현재까지도 코소보지역 주민의 90%를 차지하게 만들었다.하지만 코소보는 세르비아인의 성지(聖地)이며, 외침에 대항하는 지주가 된 지역이기 때문에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곳. 이런 뿌리를 가진 곳이어서, 옛 유고연방의 붕괴는 민족간 갈등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전쟁의 참화=78일간 계속된 발칸전쟁 중 미국과 NATO는 항공모함, 최신예 전투.폭격기, 미사일 등을 총동원해 유고, 그 중에서도 세르비아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주로 공습에 의존했던 이 전쟁의 비용은 무려 33억 달러(4조5천435억원).

세르비아 병사 1만여명이 사망.부상했고, 민간인 사망자도 1천500여명에 이르렀다. 78만2천300여명의 해외 난민이 발생해 여러나라를 떠돌게 됐으며, 이 발칸분쟁과 관련한 전체 난민은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와 전망=전쟁이 끝났지만 폐허는 여전히 남아있다. 1989년 수준으로 경제가 회복되는데는 앞으로 45년간 최다 1천500억 달러가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작년 6월9일의 종전협정 후 신유고연방군이 철수하고 대신 3만7천여명의 국제 평화유지군(KFOR)이 진주해 있다. 그러나 프레셰보.미트로비차 등 코소보 접경지역에서는 알바니아계 민병대와 세르비아군 사이의 전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제지하려는 평화유지군과의 충돌도 잦다.

발칸전쟁의 원흉으로 국제 전범재판소에 기소됐지만,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집권당 당수로 재선돼 건재를 과시했다. 거세게 일었던 반 밀로셰비치 투쟁도 야권 분열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한술 더 떠 지금은 몬테네그로에 대해 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친 서방 노선을 취하며 연방탈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보기 싫다는 것.

라인하르트 KFOR 사령관은 "10년 이상 평화유지군이 머물러도 평화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石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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