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억년전 한반도는 공룡 천국

한 떼의 브라키오사우르스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그 때 갑자기 배고픈 알로사우르스의 포효가 들려왔다. 평화도 잠시 뿐. 거대 초식공룡과 포식자 사이의 필사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알로사우르스의 공격 목표는 무리 뒤에 쳐진 새끼 브라키오사우르스. 어린 브라키오의 사력을 다한 도망에도 불구, 알로의 탐욕스런 이빨은 점차 다가오는데.

영화 '쥬라기 공원'의 한 장면이 아니다. 중생대 쥐라기에 한반도 어디선가 흔히 일어났을 법한 상황이다. 초등학생조차 티라노사우르스, 스테고사우르스, 트리케라톱스, 프테라노돈 등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면서 정작 우리나라에 어떤 공룡이 얼마나 서식했는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공룡 연구의 대가 양승영 교수(경북대 지구과학교육과·한국고생물학회장)가 최근 발간한 '한국 공룡 대탐험'(명지사)에 따르면 '중생대 한국은 공룡들의 천국'이었다. 양 교수는 국내에서 최초로 공룡 화석을 발견한 주인공.

지난 89년 양 교수와 함께 경남 고성군 덕명리 일대 화석을 연구한 미국 콜로라도대 러클리 교수가 당시 조사를 끝내고 한 말. "미국 콜로라도가 '뉴 월드(북남미 대륙)'에서 공룡의 수도라고 생각될 정도로 발자국 화석이 풍부한 것처럼 이곳 덕명리는 '올드 월드(유라시아대륙)'에서 공룡의 수도로 불릴 만큼 대단한 화석산지입니다".

공룡 흔적이 발견된 곳은 덕명리 뿐이 아니다. 양 교수는 책에서 국내 공룡화석(발자국 화석 포함)이 발견된 85개 지역을 알려주었다. 누구나 직접 화석을 보고 중요성과 가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다. 실제로 지난 94년 대구시내 신천 바닥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덕명리에서 화석을 본 적이 있는 한 시민 덕분에 알려지게 됐다.

사실 '한국 공룡 대탐험'은 그간 발간된 공룡 서적에 비해 얼핏 따분해 보인다. 화려한 그래픽사진이나 컬러 상상도가 없어서다. 그러나 내용은 어느 책보다 알차다. 30여년 간에 걸친 현장답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덕분에 마치 저자와 함께 화석 답사를 떠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게다가 외국 공룡(물론 공룡에 국적은 없지만) 일색인 책들에 비해 1억년전 한반도 어딘가를 누비고 다녔을 한국 공룡 이야기는 더욱 정감이 간다.

화석 발굴에 얽힌 에피소드와 함께 '공룡은 어떻게 복원하나', '체중은 어떻게 알 수 있나', '공룡의 이름은 누가 붙이나' 등 평소 궁금하던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다. 또 공룡 화석이 나올만한 곳, 화석의 진위 여부를 알아내는 법 등을 소개해 놓아 화석 발견용 핸드북으로도 안성맞춤. 주말 붐비는 유원지에서 시달리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 1억년전 한반도 주인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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