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부슬비가 내리다

하늘도 슬픔을 감출 수 없었음일까. 안중근(安重根)의사가 교수대 7층계단을 올라 순국하시던 날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렸다고한다. 안 의사가 일제 관헌에 붙잡혀 여순 감옥에서 처형될 때까지 통역을 맡았던 일본인 소노키 스에키가 안 의사의 순국장면을 기록한 문서가 순국90주년만에 밝혀지면서 부슬비 내린 그날의 비통한 전경이 선연하게 드러났다. 그는 조선에서 만든 흰색 저고리 검은색 바지의 명주옷을 입고 이 세상을 하직했다는 것이다. 순국직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너무나 당당한 기품을 보여주고있어 지금도 한국인의 자긍심을 북돋워주고도 남는다. 사형집행에 앞서 "뭔가 남길 말이 없느냐"는 전옥의 질문에 "아무 것도 남길 유언은 없으나 다만 내가 한 일(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므로 일한 양국이 서로 일치협력해서 동양평화의 유지를 도모할 것을 바란다"고 했다는 최후의 진술은 생사를 뛰어넘은 위인의 풍모를 보여준 것이다. 안 의사가 가신지 한세기가 가까운 지금 한일관계는 아직도 일치협력 단계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물론 한일관계는 이제 문화개방에 이를 만큼 급진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의 과거사에대한 진실된 반성없는 교류협력은 모래위의 누각과 같은 느낌마저 준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안 의사가 목숨바쳐 주창한 동양평화의 길이 아직도 멀고 험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순국후 지금까지 소재지를 몰라 안타까웠던 안 의사의 묘소지도가 최근 일본의 한 민간단체의 노력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일본내의 안 의사에 대한 평가가 진지하고 올바르게 확산되고 있는 경향과 더불어 한일관계의 희망적 조짐으로 보여지기도한다. 안 의사의 유해발굴은 북한과 중국 등 인접국들과 외교적 문제가 남아있지만 90년이 지난 이제라도 한국에서 편히 모시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홍종흠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