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가 일상생활에서 의사전달 한 방편으로써의 역할이 퇴색된지 오래다. 그러나 종이위에 글쓰기가 갖고 있을 여유나 믿음 같은 위력은 조금은 남아 있어야 그래도 구색 맞추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옛적의 편지는 가치가 많이 부여된 '신표(信表)'라는 생각이 든다. 서양의 일. 1884년 '엥겔스'는 파리에 있던 '마르크스'를 방문한 후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다. 이들이 주고 받은 편지는 1천여통. 이 과정에서 공사주의 사상이 구상 되었고 '자본론' 등 수많은 저작들이 씌어졌다. 이처럼 지식인들이 편지로 이론을 연마하고 사유(思惟)를 가다듬었다는 증표도 된다.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와 권력을 비판하고 내면의 갈등과 고뇌도 서로 토로한다.
우리의 선현(先賢)들도 이미 편지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퇴계 이황과 고붕 기대승 사이에 오간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 그 좋은 예다. 우암 송시열의 문집에 실린 경우도 상대방 물음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형식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집집마다 서간을 가지고 있어 우리 나라는 세계에 보기 드문 편지의 나라라고 하는 학자도 있지만 현재의 상황과는 사뭇 다른 세계다. 옛 사람들은 편지하나에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썼다고 한다. 뒷날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반드시 초고(草稿)를 남겼다. 받는 사람도 그 편지를 잘 간직 했다. 문집을 낼때 자신의 편지 아래에 답장을 부록으로 실었다. 편지 하나를 써도 장래에 있을지도 모를 '믿음 훼손'에 대한 대비다. 자기가 한 말은 절대 책임진다는 신의 원칙의 화두는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도 된다. 이말, 저말, 거짓말이 판치는 요즘, 특히 정치인들이 옛 선인들의 편지를 떠올릴 일이다.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에 담을 내용을 가다듬는 여유를 가지면 죽기 살기식의 '말장난'이 조금은 없어질 테니까.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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