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유산 안 남기기' 운동

지난해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1천마리의 소떼를 끌고 방북(訪北)길에 오르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강원도통천의 산골 소년 정주영이 장롱 속의 '소 판 돈'을 갖고 가출한지 50여년에 그보다 1천배 불어난 소 떼를 거느리고 당당히 고향 땅 선영을 찾는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처럼 당당하던 정 회장의 모습이 요즘 말이 아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이룩했던 그룹은 아들 형제간의 후계자 다툼으로 흔들리고 있다. '왕'회장 또한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어 안달하는 평범한 늙은이의 초라한 모습일 뿐이다.

그가 이 시대를 통찰하는 지혜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도 "이미 현대는 우리 정씨 일가의 것은 아니다"라고 선언, 전문 경영인 체제로 넘겼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번 같은 추태는 빚어지지 않았을것만 같아 참 아쉽다. 어쨌든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가난한 농군의 아들'들에게 인간 정주영은 지울길 없는 희망이자 마음속의 진정한 영웅이기에 이번 현대 그룹 사태를 지켜보는 우리는 더욱 허탈해지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올해로 16년째 되는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보다 사회로 환원하자'는 취지의 이 운동은 84년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조용히 번져오면서 600명의 회원이 가입, 무조직, 무사업, 무회비, 무홍보, 무강령의 5무(無)원칙을 강조하고 있다.한마디로 '무욕봉공(無慾奉公)'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어 현대그룹 정씨 현제의 '탐욕무한(貪慾無限)'과는 거리가 멀다. "한 사람의 사회적 특권을 자신의 창의성과 노력으로 일궈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도적질이나 다름없다"는 어느 회원의 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 귀담아 들을만 하다는 생각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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