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공과 사의 블루스

대구의 한 40대 구청장은 '점잖은' 사석에서 불쑥 주고야비(晝高夜卑)를 외쳐 좌중에 웃음이 일게 한다. 흔히 화투판에서 선(先)을 정할 때 쓰는 이 말을, 그는 일과후 사적 모임에 동석한, 자신의 고교 7년 선배이자 부하인 50대 부구청장과의 관계를 집약하는 설명어로 곧잘 써먹는 것이다. 말하자면 낮에는 민선 구청장인 자신이 상관의 자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지만, 사무실을 벗어난 술자리 같은 데서는 어디까지나 후배로 돌아가 '하늘 같은' 대선배를 깍듯이 모시겠다는 얘기다. 얼핏 술자리의 어색함을 눙쳐보려는 우스개로도 들리겠지만, 거기에는 스스로 공과 사를 엄정하게 구분지으려는, 자못 속깊은 '자기선언'이 담겨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구청장이 매사를 그처럼 명쾌하게 경계짓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고교 대선배와 5년째, 민선 출범 이후 좀체 찾아보기 어려운 오랜 기간을 단체장과 부단체장의 관계를 유지하며, 비교적 구정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공.사 범벅된 지자체

주민이 직접 시장 군수 구청장 또는 시장 도지사를 뽑기 시작한 지 벌써 2기 중반에 접어들고 있다. 당초 목적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으로도 주민들의 시야에 들어올 법도 할 때이다. 그러하건만 지금 들려오는 단체장의 온갖 행태는 실망과 개탄으로 논평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공과 사를 범벅으로 만드는, 여러 단체장의 오만과 독선의 퍼레이드는 지방자치의 시기상조를 주장하는 편에 차라리 서고 싶은 심정까지 들게 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인사 병폐의 문제다. 승진 전보에 있어, 인사행정의 기본인 능력과 적성을 제치고 단체장에 대한 충성도가 치고 올라와 있다는 데서는 말문이 막힐 뿐이다. 조직과 직무에 대한 충성이 아니고, 단체장 개인에 대한 아부가 우선순위의 으뜸 잣대로 행세한다니, 이게 우리가 기대한 지방자치의 모습이란 말인가.

##실세 눈 맞추는 일에 더 신경

그런 판이니 이른바 노른자위 자리는 측근과 심복들이 점령해, 인사철 마다 그들끼리 '책상물림'을 하고, '실세'니 '왕당파'니 하며 호가호위(狐假虎威)의 허세마저 주저없이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공무 보다는 단체장 집안의 집사일에 더 머리가 터지고 있다는 얘기는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출근을 하면 공연히 단체장 방이나 '실세' 주변을 기웃거리며 '그들'과 눈을 맞추는 일에 신경을 더 쓴다는 것도 낯설지 않은 얘기다.

이렇게 돌아가는 지자체 마다 온갖 연줄을 엮은 사조직이 발호하고, '주류'에 끼지 못한 소외그룹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들끼리는 스스로를 '왕따파'라며 자조해보지만, 각 지자체간 인사교류가 사실상 막힌 현실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결국 뒷전에서 울분만 삭이고 있다는 것이다.

공과 사의 뒤바뀜 또는 뒤섞임은 연임의 경우일수록 그 정도가 심한 모양이다. 두번째 임기에 접어든 이후는 좀체 직언에 귀를 기울이려는 단체장이 드물다는 것이다. 제대로 보고라도 할라치면 짜증부터 낼 정도라고 한다. 자연히 단체장의 심기만 살피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점점 더 어지럽게 춤을 추는 판이다.

##증오심이 공직사회 좀먹어

그로 인한 부작용은 결코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각급 지자체의 경쟁력 약화다. 자기성장과 승진을 보장하는 직업공무원 풍토가 뒷전으로 밀리고, 공직의 사유화와 상품화가 판치면, '중앙 집권'에 대항하려는 '지방의 힘'은 물건너간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 속에서 매관매직과 뇌물수수 같은 행정적 부패가 싹트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더 무서운 것은 증오의 번식이다. 단체장이 사사로움을 좇아 몸을 움직이면 그 반동으로 조직에 대한 막말과 특정인에 대한 적개심이 공직사회를 좀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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