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춘추

지난 여름 초입에 친척집에서 귀가 쫑긋하고 다리가 짤막하며 하얀 털빛에 비해 눈과 코가 유난히 새카만 치와와 잡종 새끼 한 마리를 얻어왔다.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을 수 있을만큼 작은 강아지를 놓고 이틀을 고심한 끝에 '개(犬)나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썽을 부려도 나리, 귀엽게 재롱을 떨어도 나리…. 두세 살짜리 아기 수준의 지능을 가진 녀석을 껴안고 씻기고 먹이고 하는 동안에 무섭게 정이 들었다. 그러다 한 육개월? 사춘기를 앓으며 녀석의 바깥 출입이 부쩍 잦아졌다. 자동차 무서운 줄 모르고 찻길을 예사로 가로질러 다니던 녀석이 한순간 방심한 틈에 달려오는 자동차 바퀴에 튕겨나갔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는 사이 녀석의 재롱스런 모습은 희미해졌지만 녀석의 자리는 다소 불편을 느낄 정도의 쓸쓸함을 던지며 한참을 휑뎅그레 비어 있었다. 누가 녀석의 행방을 물을라치면 "우리 개나리 시집보냈다"라고 얼버무리는데 마음이 어찌 그리 짠한지.

비로소 이름의 의미를 이해했다. 이름은 단순히 편리를 위해 선택된 명사인 것만은 아녔다. 몇 번이고 거듭 부르는 사이 말이 되어 나간 이름은 살가운 정을 동반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곤 했다. 만약 녀석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이틀을 고심해서 지은 이름을 밥 먹는 횟수보다 더 자주 부르며 정을 쌓지 않았더라면걖. 골목골목 흔해빠진 잡종 강아지 중의 한 마리에 불과한 녀석의 증발에 그처럼 쨍한 아픔을 느꼈을까.

이렇듯 이름을 통한 교감은 그 이름을 부른 횟수만큼 가슴에 화석처럼 뚜렷한 자국을 남긴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이름으로 불리운 실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이름만은 돌올히 남는다. 그러다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실려 거듭 불리우며, 이름은 어떤 대상과 대상의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내게 있어서 이름의 의미는 수천만 마디의 언어를 합쳐놓은 아름다운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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