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투표의 결과와 유권자의 책임

4·13 총선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각 정당의 공천을 둘러싼 갖가지 잡음과 논란은 총선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으로 이어졌고, 지난 29일 마감된 후보자 등록은 후보자들의 탈세나 병역기피문제와 관련해 의외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애초부터 후보자들의 납세와 병역문제에는 상당한 뇌관이 장전돼 있으리라 예상됐지만 실제로 후보자들의 자진신고만으로도 그 폭발 가능성은 엄청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 '선량(選良)'이 되겠다고 나선 많은 후보자들 중 탈세와 병역기피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들에 대한 언론매체와 시민단체의 집중공격은 이번 총선에서 최대의 승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우리들 유권자는 개정 선거법과 시민단체의 활동, 인터넷의 영향으로 이번 총선에서 이제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광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으며, 이는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과 더불어 우리들의 후보자 선택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의 투표행위가 반드시 객관적 정보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느냐의 문제에 이르면 대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지난 날 수차의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을 통해 이루어진 투표의 결과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우리는 선거를 치르고 나서는 언제나 거듭되는 정치적 무능과 부패, 정치적 지배자의 전횡에 치를 떨고 관권과 금권, 혈연-지연-학연으로 대변되는 갖가지 연고에 얽매인 선거를 다시금 치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거듭되는 우리들의 잘못된 투표관행을 쉽사리 교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이 정치적 부패, 무능, 불신은 바로 권력과 금력, 각종 연고에 탐닉하는 유권자의 책임 이외에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유권자가 선거라는 스스로의 권리를 더 이상 신성한 '의무'로서 행사하지 않을 경우,우리는 탈정치와 반정치를 거쳐 폭압적 정치의 지배하에 처하지 말라는 보장을 받을 수 없음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비교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대학가에는 대학구성원의 총장선임권을 누가 가질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몇 개의 사립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립대학에서는 총장 선임권이 이미 재단으로 복귀됐고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총장선임권이 교육부나 정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학구성원에 의한 총장직선제는 1980년대 후반 우리사회의 민주화과정에서 획득된 학원민주화의 가장 구체적 표현의 하나였다고 하겠다. 학생을 불온집단으로 몰고, 진보적 교수를 탄압하면서 학원을 정치도구화하는데 앞장선 관선총장이나 사학재단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요구에 묵종하며 학원을 영리단체처럼 운영하던 적지않은 사립대학의 총장을 대신해 학문적 이상을 추구하고 학원의 민주적 운영을 담보하는 덕망있는 인사를 총장으로 추대하려던 것이 총장직선제의 당초 의도였다. 그러나 이 총장직선제는 시행과정에서 정치판에 못지않은 추잡한 타락상을 노출, 사회적 빈축을 사게되고 마침내는 제도 자체의 존폐 위기를 맞게된 것이다.

아무리 좋은 민주적 제도라도 구성원들에 의해 성실하게 운용되지 못할 경우에는 언제나 폐기되거나 탈취당할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대학총장 직선제의 경우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개명천지에 어느 독재자나 참주(僭主)가 국민의 신성한 선거권을 회수 혹은 탈취해 갈 것이냐고 일갈할 수 있겠으나 우리가 신성한 권리이자 의무인 선거권을 합당하게 행사하지 못할 때 그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엄청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기회는 결코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4·13총선을 최후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유권자로서의 신성한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투표행위에 수반하는 책임도 동시에 질 수 있는 각오를 새로이 해야 할 것이다. 선거혁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같은 유권자들의 다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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