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육계에 새롭게 등장한 화두다. 교육부가 과열입시를 막기 위해 특기와 적성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부터다.이후 전국 각급 학교에는 특기-적성 교육 바람이 불었다. 학교마다 과목을 결정한다. 강사를 초빙한다,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실속 있는 특기-적성 교육을 계속하는 학교는 찾기 힘들다. 대학에 갈 수 있을 만큼의 특기와 적성 개발은 꿈꾸기조차 어렵다. 고교의 경우 대부분 국어, 영어 등 교과와 관련된 교육이 대다수다.이런 가운데 '전교생 1인 1특기 갖기 운동'을 벌이는 학교가 있어 눈길을 끈다. 포항 북부 해수욕장에서 승용차로 서쪽을 향해 10분쯤 달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창포중학교다.
일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지난 94년 문을 연 남녀 공학의 신흥 학교. 그러나 특기와 예능교육만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전교생이 하나의 특기를 갖는다는 것. 그것도 예능이라면 미래를 내다보는 교육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디지털 세상 이후는 문화의 시대가 오리라는 예견이 이미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 시대를 살아갈 주역들이 자신에게 맞는 예능 한 가지씩 익혀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토요일인 지난달 18일. 교문을 들어서는 창포중 학생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학교가 아니라 나들이라도 가는 표정들이었다. 전일제 클럽활동의 날이기 때문이다.상당수 학교들이 평일 한시간씩 클럽활동을 하지만 창포중은 토요일로 모았다. 한시간으로는 시간이 짧아 막 재미를 느끼려다가 수업을 마치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깊이를 쌓기는커녕 흥미조차 떨어지기 일쑤.
하지만 말이 쉬워 전일제 수업이지 실제 시행에는 문제점이 적지 않고 자칫 부실해지기 쉽다. 천기석 교장은 "한시간씩 하는 클럽활동은 이동하고 분위기를 잡는 데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 문제"라며 "학생과 교사들의 분위기, 클럽별 활동상황 등을 면밀히 고려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우 1학년만 전일제로 클럽활동을 했으나 올해는 전 학년으로 확대됐다.
현재 운영 중인 클럽은 음악, 미술, 무용, 문예 등 40개가 넘는다. 교사들이 지도하기 힘든 분야는 외부에서 실력있는 강사들을 초빙해 온다. 이 가운데 성악, 기악, 국악 등 음악 분야는 순수 클럽활동으로는 도내에서 인정받는 수준급이다. 합창단의 경우 지난해 10월 경북도 교육청 주최 '화랑문화제'에서 쟁쟁한 타학교 합창단과 맞붙어 은상을 받기도 했다.
예능 분야 외에 유적답사반, 야생동식물탐사반, 향토조사반, 인물탐구반, 한지공예반 등 다소 이색적인 클럽도 눈에 띈다. 토요일 오전을 꼬박 클럽활동에 보내지만 집에 가는 것도 잊고 자율적으로 연습, 실기에 빠지는 학생도 많다.
천 교장은 "1인 1특기 갖기 운동은 자칫 삐뚤어지기 쉬운 사춘기에 예능 소질을 개발하도록 함으로써 인성교육까지 동시에 추구하자는 취지"라며 "자아발견과 정서순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게 자체 평가"라고 말했다.
매일 한시간씩 이루어지는 특기-적성 교육도 다른 학교와는 차이가 있다. 물론 교과서와 관련된 과목도 있고 볼링이나 수영 등 운동도 있다. 그러나 판소리,
가야금,병창, 합창, 회화, 디자인, 공예 등 클럽활동과 연계된 과목이 상당수다. 매일 조금씩 배워 클럽활동에서 작품화하고 실력을 쌓으려는 학생들이 앞다퉈
신청했다.
이렇게 1년 동안 실력을 쌓고 나면 기다리는 것이 종합예술제. 개교 전 주위 야산에 산까치가 많이 살았다고 해 '산까치 예술제'로 불린다. IMF사태를 맞이한 지난 98년을 빼고는 개교 이후 연례행사로 정착돼왔다.
제5회 산까치 예술제가 열린 지난 2월15일. 장소 관계로 일정이 지연돼 3학년은 이미 졸업하고 1, 2학년만으로 이루어진 행사였지만 관중들의 갈채는 공연 내내 계속됐다. 그야말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한데 어우러져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였다.
학생 41명의 합창에 이어 피아노, 독창, 중창이 이어졌고 대금산조와 판소리가 흥취를 더했다. 2부에서는 이 학교 심근석 교사가 직접 창작, 연출까지 맡은 연극 '나무들의 합창'이 공연됐다. 소외되고 따돌림 당한 학생이 친구들과 화합해가는 과정을 담은 이 연극은 학생, 학부모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던져줬다.
예술제를 총기획한 최경자 교사는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중점을 뒀다"며 "합창단의 경우 애초에는 노래부르기에 자신이 없던 학생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능의 경우 학생들에게 격려를 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초기에 "소질이 없다" "잘못한다"고 한 두 마디 들으면 낙담하기 쉽지만 다소 부족해도 어깨를 두드려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3학년 교실에서 만난 여학생들은 "모두들 클럽활동을 하는 토요일을 기다리는 마음이예요. 입학 때부터 예능을 해오다 보니 다른 학교에 비해 우리 학교 아이들이 더 착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올해는 12월에 예술제가 열릴 예정. 공연 뿐만 아니라 그림, 서예, 공예, 시화, 봉제 등 다양한 작품 전시도 이뤄진다. 학생들은 "1년 동안 우리가 쌓은 솜씨, 그 때 보러 오세요"라며 밝게 웃었다.
---포항 창포중 천기석 교장
"올해 경북도 교육청이 저희 학교를'문화예술 활동 시범학교'로 지정한 것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들에게도 대단히 고무적입니다"
개교 후 4대 교장으로 지난해 부임한 천기석(58) 교장은 부임 전 경북도 교육청에서 예능(음악)담당 장학사로 10년간 근무한 실력파. 덕택에 실무 지식을 현장 교육에 적용시키기에는 그 누구보다도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 교장은 "학생들의 재능을 개발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발표 기회를 많이 마련해 주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클럽활동이나 특기,적성 교육 외에 일반 수업 시간에도 가능한 많은 학생들이 발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라고 교사들에게 수시로 당부한다. 스스로 참여하는 수업으로 학교 오는 것이 재미있도록 유도하자는 것.
천 교장은 초등학생의 경우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중학생들은 교사들이 "너는 할 수 있다"라며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육부가 벌이고 있는 특기,적성 교육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교사들의 열의가 필수적이라는 것.
그는 또 과목 선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학생들의 취향에 맞춰 대중적인 데만 치우치다 보면 학교교육 본연의 목표를 잃기 쉽다는 것.
"국악, 성악 등 순수예술에 대한 이해를 넓혀줌으로써 일탈하기 쉬운 사춘기 학생들의 정서를 순화시켜 주는 게 예능교육의 또다른 목표입니다. 각 학교들이 소홀히 여기기 쉬운 특기,적성 교육을 한시 바삐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林省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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