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문학의 새로운 조짐

파격적이고 외설적이며 그로테스크한 언어와 블랙 유머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학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90년대 문학의 특징인 낭만과 서정과는 동떨어진 이같은 문학의 새 조류는 엽기적 상상력과 잔혹하고 비극적인 세계 인식을 드러내며 21세기 문학의 새로운 조짐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이런 와류(渦流)의 중심에 서 있는 문학인은 소설가 백민석씨와 정영문씨, 시인 김언희씨 등 일군의 젊은 작가들.

백민석씨는 최근 상식에서 일탈한 퇴폐적 군상들의 내면세계를 그린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고, 지난 95년 첫 시집 '트렁크'에서 여성 성기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과 사도-메조키즘적 성행위 묘사로 문단의 충격을 준 장본인인 시인 김언희씨가 최근 두번째 시집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를 민음사에서 펴냈다. 또 '하품' '검은 이야기 사슬' '핏기 없는 독백' 등의 소설로 눈길을 끌고 있는 정영문씨가 두번째 소설집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를 세계사에서 발표, 새로운 글쓰기의 흐름을 가늠케 한다.

김씨의 이번 시집은 왜곡된 욕망이 배태한 끔찍한 현실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포착한 '트렁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온갖 사물들을 성적 욕망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남녀간의 도착적 에로티시즘으로 치환시켜낸 그는 이번 시집에서 토막난 시체와 비그러져 나온 내장, 악취나는 음부와 오물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폭력적 언어들로 가득 채워 놓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공포와 폭력, 쾌락과 배설이 난무한다. '달걀 속에서 주르륵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랩으로 말아놓은 살코기 덩어리에, 입'이 생긴다. 또 '돼지 대가리가 달리는'가 하면 정체불명의 구멍은 '내 머리를 옴쭉옴쭉 씹어 삼킨다'. 그로테스크한 육체 이미지와 도발적인 성적 은유가 시집 어디에서고 느닷없이 출몰, 위협과 불안을 조성한다.

평론가들이 '끔찍주의'라고 평가한 그의 시세계는 마치 '도살장의 언어'처럼 대담하고 집요하다. 번뜩이는 광기와 노골적인 악마성, 추악한 범죄의 냄새, 역겨운 환상 등이 난무한다. 이같은 악몽같은 시를 통해 세계의 진실을 들춰내려는 시인의 잔인한 블랙 유머로 인해 독자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정영문씨의 소설집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소설을 통해 삶의 내부를 색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문제성을 탐구한다. 굳이 말하자면 리얼리즘에 속하기보다는 모더니즘의 전통에 더 가깝다.

현대인의 권태로움과 죽음의 색채로 뒤덮여 있는 그의 작품은 지리하면서도 집요하게 삶의 불우한 조건을 파헤친다. 이런 권태로움은 희망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이 불가피하게 맞이해야 하는 존재 조건이자 죽음과 맞닿아 있다. 권태로움을 벗어나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존재의 조건으로부터의 일탈과 전복을 문학적으로 시도한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블랙 유머를 통해 삶의 부조리함과 무의미함을 부각시켜 비극적인 현대인의 운명을 보여준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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