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 교감으로 정년 퇴직한 최모(63·대구시 대명동)씨는 최근 외손자의 재롱도 볼겸 출가한 막내딸 집에 들렀다가 민망한 일을 겪었다. 딸이 '아빠'라고 부르는 호칭에 거실에 앉았다가 무심코 "왜"라고 대답을 했던 것. 그런데 안방에 있던 사위가 같은 대답을 하며 나오는 게 아닌가?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딸의 행동에도 적잖이 놀랐지만, 장성한 딸이 지금껏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도록 내버려 뒀던 교육자인 자신도 부끄러웠다고 했다.
우리사회가 과거 대가족 생활을 하면서 분별해 사용하던 가족·친인척간 호칭들이 흔들리고 있다. 부부 중심의 핵가족화 이후 혼동돼 쓰이거나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추세를 '현대적이고 세련된 언행'으로 알고 따라가기만 할 뿐, 바로잡아 보려 하지는 않는다.
요즘 젊은 아내들은 흔히 남편을 '아빠'라 부른다. 남편은 아내를 '와이프'로 호칭한다. 갓 결혼한 신부가 남편을 연애시절 그대로 '형'이라 부르는 경우도 드물잖다. 가장 기본적인 부부간 호칭·지칭어 조차 변하고 있는 것이다.
주부 김모(35·대구시 효목동)씨는 집안일로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갓 장가든 시동생을 '삼촌'이라고 불렀다가 시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삼촌'이란 촌수를 나타내는 말일 뿐 호칭어가 아니라는 것. 아이들이 숙부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은 워낙 일반화 된 일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시동생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느냐는 질책이었다.
김씨는 그 뒤 말을 바꿨다. 총각 시동생은 '도련님', 남편의 형이나 장가 든 시동생은 '아주버님'. 이렇게 하고 보니 새 호칭이 훨씬 예스러우면서도 품격있는 말로 느껴지더라고 했다. 아이가 부르는대로 '고모'라 부르던 시누이에 대한 호칭도 바꿨다. '아가씨'란 호칭이 한결 정감났다.
회사원 이모(42·대구시 상인동)씨는 퇴근길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아들녀석 친구의 '00 아저씨'란 부름말이 뭔가 잘못된 호칭이란 느낌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은 친구 이름을 넣어 '00 아저씨' '×× 아줌마'라고 친구 부모를 흔히 부른다. 그렇지만 이를 바로잡아 가르치는 어른은 거의 없다.
우리말 학자들은 "친구의 부모는 그냥 '아저씨' '아주머니'로 부르거나, 친구 이름을 넣어 '00 아빠' '××이 엄마'로 말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언어교육"이라고 강조한다. 대구 ㅊ중학교 국어교사 박모(40)씨는 출근길 아침 방송에 출연한 정부의 고위 관료나 학계의 원로라는 사람들까지 '우리나라'를 '저희 나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나무랐다.
국립 국어연구원 허철구(38·문학 박사) 학예연구관은 "이같은 국어의 기존 질서 이탈은 어떻게 해서든 단조로움에서 벗어 나려는 평범한 욕구가 작용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언어 질서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의식이 가장 큰 원인이리라 분석했다. 더불어 그는 진정한 언어의 자유는 모든 이가 공유하는 약속 안에서 발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규칙을 잘 알고 그 안에서 최대한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가 훌륭한 선수이듯이.
-趙珦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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