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일부 고교에서는 학생들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2학년생들이 오후 5시를 전후해 학교를 마치고 귀가한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고2는 보충수업이다, 자율학습이다 해서 밤10시를 전후해 하교했는데 올해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 것이다. 교육부가 4월부터 심야 자율학습을 억제하라는 지침을 내리자 일부 학교는 아예 1, 2학년들의 자율학습을 폐지한 데 따른 현상이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 사이에서도 이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반대-학습권 보장하라
대구시 교육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온 ㄱ여고생의 글. 좬지금 시각은 6시15분. 난 지금 집에 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은 공부하고 있을 때… 한반에 3분의2 정도의 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원한다. 집에서 열심히 하라고 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없단 말인가좭
또다른 학생은 '지난 2주 동안 야간 자율학습을 하면서 너무나 행복했다. 반 친구랑 더 친해지고 밤에 공부를 하고 집에 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중학교에서는 맛볼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제 그런 순간을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다'고 허탈해했다.
ㅇ고 교사는 "공부는, 그것이 비록 대학입시만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의 의무이자 권리"라면서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억지로 막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의 요구 외에 또다른 문제는 가계 부담 증가. 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일찍 귀가하는 것을 보고 가만 있기 힘든 게 현실이다. 어지간해서는 집에서 공부할 분위기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학원을 보내든, 독서실에 보내든 무슨 수를 써야 하는 것이다.
한 학부모는 '전국 모든 학교에서 꼭같이 자율학습을 폐지한다면 받아들이겠지만지역마다,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면서 '당장 아이를 억지로 학원이나독서실에 보내야 하는 형편이니 부모로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불평했다.
▲찬성-학교가 과열입시 조장 말아야
야간 자율학습 폐지를 주장한 한 학생은 '자기 스스로 끈기를 가지고 정말로 알려고 한다면 옆 사람을 보고 공부하지 않고 남을 위해 공부하지도, 시켜서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데 자율학습이란 명분으로 학교에 매어두려는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 학교에서 지금까지처럼 자율학습이란 미명 아래 거의 강제로 학생들을 늦게까지 붙잡아두는 방식이 문제라는 데는 교사들도 대부분 동의한다. 또 이들을 감독하기 위해 교사들이 돌아가며 교실을 지키는 풍경도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고3교사는 '각 고교가 상위권 대학에 많은 숫자를 보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학생들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게 사실'이라며 '학생들의 의지를 무시한 일방적인 시행은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제언-원칙과 현실의 접점 찾아야
대구 ㄱ고의 경우 최근 2학년생들을 상대로 심야 자율학습 희망여부를 조사했다가 신청자가 너무 많아 시행을 유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 관계자는 '교육부가야간 자율학습을 하더라도 감독이나 교실관리에 드는 비용을 일체 걷지 말라고 하니 너무 많은 숫자를 수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고교생들 가운데는 자율학습에 대해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엇갈린다. 그러나 고교 2학년의 경우 '우리를 실험용으로 여기지 말라'는 주장은 한결같다. 특기와 적성을 위주로 하는 2002학년도 새 입시제도, 수행평가, 사설기관 모의고사 금지 등 이들은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학교생활을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주요 대학들이 내놓는 2002학년도 입시제도가 결국 학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쏠리는 데 있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야간 자율학습 시행 여부도 결국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고교 교육이 대학 입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부정적 측면이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반대할 수만은 없다는 것.
결국 고교생들이 교육부의 현장감 없는 개혁정책이나 새로운 입시제도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육주체들이 머리를 맞대는 일이 시급하다고 충고한다. 우선 학교 관계자들과 학부모, 학생들이 의견을 모으고 최선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자리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일신학원 윤일현 진학실장은 '대학입시와 관련된 문제는 학교나 학생, 교육부 등의 일방적인 요구만 받아들이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학교 단위로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학생들의 분위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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