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막을 내린 일본 오부치 정권의 총리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는, 1998년 7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당시 총리의 경제 실책에 의한 실각으로 외상에서 급기야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었다. 이로써 내각의 수장에 오른 그는 온화하고 성실하다는 주위의 평가대로 항상 잔잔한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 왔다.
그가 내걸었던 G8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일본 경제의 완전한 회생 등의 결실은 보지 못하고 불시에 물러나게 됐으나, 이들 정책의 성공에 필요한 토대를 구축한 공은 그에게 돌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이다.
선거구인 군마(群馬) 3구에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및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등 전 총리 같은 거물들과 격전을 치르면서도 인내와 겸손으로 극복, 12기 연속 의원 배지를 달게된 것이 그가 총리직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오부치 내각의 집권 1년8개월은 파선돼 가라앉고 있는 일본 경제호의 인양작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오부치는 집권하자 '경제회생 내각'을 표방하고 직속으로 전문가들에 의한 경제전략회의를 설치,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24조엔 규모의 경제회생 정책을 발표하는가 하면, 제로 금리정책을 견지하면서 부실은행에 대해 7조5천억엔의 자금을 투입해, 가라앉고 있는 일본경제호의 부양을 위해 안간힘을 다한 것이다.
그는 작년 10월 2차 내각을 발족한 이후에도 18조엔의 신정책을 내놓는 등 경제회생 마무리 작업에 정성을 쏟았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1997년4월 후퇴국면에 접어 들었던 일본 경기가 지난달부터 처음으로 기업의 수익 개선, 설비 투자 호전 등 회생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오부치총리는 대외관계에서도 적잖은 공을 쌓았다. 그중 손꼽히는 것이 전례없이 좋아진 한일 관계.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이뤄진 관계개선에는 양국 정상간의 국가차원을 넘어선 인간적인 신뢰와 노력이 기여한 바 크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오부치 내각은 특히 한국이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 금융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아 한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또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김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며 한국 및 미국과 함께 3국 공조체제를 굳건히 지켜려는 성의도 보였다.
그러나 2년에 걸친 적극형 예산 편성으로 올해 말 기준 장기 채무잔고가 무려 645조엔에 도달, 차기 내각에 부(負)의 유산을 물려줬다는 지적을 받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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