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후보자들의 침 튀기는 호소에 올해는 봄도 숨가쁘게 넘어가는 것 같다. 이번 선거는 납세.병역기록에다 전과까지 공개되는 바람에 후보자들의 입이 더욱 거칠어졌다. 온통 상대방 비방 투성이다.
떨어지는 벚꽃 아래서 귀동냥이라도 하려하면 식상한 말잔치에 이내 발길을 돌리게 된다. 선량(選良)을 뽑는다는 기쁨보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골목길에서 침튀기던 이야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고 4년후면 같은 '데자부'(어디서 본듯한 느낌)가 또 계속될 것이라는 허망함이 엄습해 온다. 행동이 없는 말처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봄날 찬밥 한 그릇의 의미가 새삼 떠오른다.
◈침튀기는 막바지 입
진(晉)헌공(獻公)에는 신생(申生)과 중이(重耳)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헌공의 애첩 여희(驪姬)는 자기 소생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고 온갖 모함으로 어진 신생을 스스로 죽게 만들자 동생 중이는 나라를 뛰쳐나와 충신들과 함께 천하를 방황하게 된다.
19년간의 망명생활 끝에 중이는 결국 '춘추 오패'의 하나인 진문공(晉文公)으로 등극하지만 그의 피난생활은 처참했다. 한 번은 제나라로 도망가던 중 배가 고파 농부에게 밥 한그릇만 달라고 했다가 그 농부로 부터 "이 흙을 구워 그릇부터 만들라"며 흙세례를 받는 모욕을 당했다.
할 수 없이 일행은 고사리를 캐서 쪄먹었다. 그러나 중이는 고사리만으로는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때 신하 개자추(介子推)가 어디서 생겼는지 고깃국 한그릇을 중이에게 바쳤다. 중이는 고깃국을 단숨에 비우고는 도대체 고기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개자추는 "그것은 신의 허벅지 살입니다"고 했다. 중이는 눈물을 뿌렸다.
그렇게 열국을 돌아나니던 중이가 마침내 때를 만나 고국으로 돌아와 진문공이 되었다. 문공은 논공행상을 하기 위해 먼저 신하들을 모았다. 망명시절 같이 있었던 신하는 1등 공신, 귀국에 힘써준 신하는 2등 공신, 그를 영접한 신하는 3등 공신으로 정하고 상을 받지 못한 신하는 자진해서 신고하라고 했다.
이때 충신 개자추는 다른 신하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공적을 왕에게 진언하는 것을 보고는 궁중출입을 삼갔다. 당연히 논공행상을 하는 날 개자추가 참석하지 않았는데 왕도 총망중에 그만 그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에 개자추는 노모를 업고 홀연히 면산(綿山)으로 들어갔다. 진문공은 뒤늦게 개자추가 빠진 것을 알고 즉시 사람을 보냈으나 이미 산으로 들어간 뒤였다. 진문공은 친히 면산에 이르러 몇날 며칠을 개자추를 불렀으나 나타나지 않자 "개자추는 효성이 지극하니 불을 놓아 숲을 태우면 반드시 어머니를 업고 산을 내려올 것"이라며 산에다 불을 질렀다. 그러나 온 산이 다 타도록 개자추는 내려오지 않았다. 며칠후 진문공이 발견한 것은 어머니를 안고 타죽은 개자추의 시체였다.
◈말잔치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진문공은 산아래에다 그의 뼈를 묻고 불지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일년 중 이날만은 일체 불을 피우지 말기로 했다. 그래서 백성들은 미리 밥을 해두었다가 이날은 찬밥을 먹었다. 이날이 바로 한식(寒食)이다.
요즘은 식목일에 가려 한식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 개자추의 희생은 말의 성찬이나 다름없는 오늘의 총선현장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지난 한식때 성묘를 못간 사람은 이번 주말 조상의 산소를 돌아보며 '찬밥'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오는 13일에는 어느 후보를 '찬밥신세'로 만들어야 할 것인지 망설임이 한결 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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