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명의 숲-4)기청산 식물원 이삼우 원장

인간사 모든것이 자연의 섭리대로 되지 않는것이 있을까.그렇다면 도대체 '자연의 섭리'란 무엇인가. "노자(老子)에 '도법자연(道法自然)'이란 말이 있어요. 즉 자연을 통하지 않고는 도(道), 즉 섭리를 깨우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무를 사랑하다 보니 그 답이 어느정도는 풀리는것 같아요"

포항시 북구 청하면 덕성리 청하중학교 바로 뒤쪽에 자리잡은 '기청산식물원' 이삼우(李森友·61)원장.

식물원 정문에 붙어 있는 '箕靑山 植物園'이란 간판이 우선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이 원장이 직접 짓고 쓴 글.

'箕靑山'뜻을 묻자 "箕(키 기)란 쭉정이는 버리고 알곡만을 가려내는 키(채), 삼태기를 뜻하는 한자로 우리 산천이 알짜(알곡) 나무가 가득한 푸른 산으로 가꾸자는 뜻으로 지은 것"이란다. 식물원 간판명에서부터 그의 각별한 나무 사랑의 현실성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李森友(이삼우)'라는 이름에서는 어쩌면 '빽빽한 나무 숲과 친구가 돼 살아라'는 업보(業報)를 짊어지고 태어났던 것일까.

'기청산 식물원'의 전체 면적은 3만여평. 개인이 운영하는 식물원치고는 상당히 큰 면적이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각각 식물원을 조성중이지만 3, 4년 뒤에 문을 열 예정이어서 아직은 지역 유일의 대형 노천 식물원인 셈.

이 곳엔 수목류 500여종과 초화류(草花類) 500여종 등 1천여종의 식물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느티·참느릅·이팝·모감주·참·층층·때죽나무…등. 이미 수십년된, 주로 우리나라 고유 수종들이 대부분.

또 식물원 구석 구석에는 우리의 토종 꽃들이 긴 겨울 잠에서 깨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할미꽃, 수선화, 제비꽃, 양지꽃, 얼레지, 노루귀, 돌단풍, 금낭화, 하늘 매발톱… 등 없는 꽃이 없어 한마디로'우리 식물의 산 교육장'이다.

"우리의 경우 일본, 영국등 선진국에 비해 식물 문화가 한 20년 정도는 뒤져 있어요. 관람 문화는 더 하고요. 식물원을 마치 관광농원에 놀러 온 것으로 알아요. 선진국 학생들이 매우 질서 정연하게 관람을 하는 것을 보노라면 우리는 언제쯤 저 정도 수준이 될까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식물원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곳은 경기도 광릉의 '국립수목원'을 비롯, 15군데 정도가 고작인 것이 우리의 현주소.

하지만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140여개나 된단다. 국민들의 '식물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원장은 몇년전부터 해오던 일반인들에 대한 식물원 공개를 최근 중단하기도 했다. 우리 식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보호 의식을 깨우치기 위해 시작한 것이지만 관람객이 너무 많이 오는데다 그 소중함을 몰라 훼손되는 식물이 적지 않았고 작업 방해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

하지만 나무나 꽃에 대해 진정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후원회를 구성, 주말에 식물원을 공개한다.

이 원장은 비단 지역뿐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식물 박사 및 보호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국식물원 협회 회장 및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 포항·경주지구 창립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 식물을 바로 알리는데 적지않은 힘과 시간을 쏟았기 때문.

이 원장은 취재차 방문했을 때 마침 모감주 묘목단지에서 인부 셋과 함께 포항시에 기증할 묘목을 캐고 있었다.

"모감주나무는 봄철에 아름다운 금빛 꽃을 피워내는 이 지역 향토 수종인데, 시에서 모감주 심기 운동을 편다니 너무 기뻐 300주 정도 기증하려는 것이지요"

사실 이 원장은 수년전부터 포항 지역 모감주 나무 심기 운동의 불을 지핀 장본인이다.

묘목단지 뒤쪽에는 이곳 식물원의 역사를 말해주듯 쭉뻗은 낙우송(落羽松) 한그루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우뚝 서 있었다.

"떨어지는 낙엽이 꼭 새의 깃털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대학졸업후 이곳에 내려와 곧바로 심었으니까 올해 벌써 서른세살이나 되는군요"

이 원장은 중·고등학교때부터 이미 농촌 개혁에 대한 남다른 열의를 갖고 있었다. '시골도 도시못지않게 잘 살 수 없을까','산과 들을 아름답게 가꿀 수는 없을까'란 당시의 애태움은 이순(耳順)이 넘은 지금도 고스란히 그의 삶의 화두가 되고 있다.

결국 그는 서울대 농대에 진학한다. 또 졸업과 동시에 고향에 내려 온 그는 선친으로부터 물려 받은 과수원 경영을 시작으로 나무와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그는 과수보다는 곧바로 산천에 흩어져 있는 우리 고유 나무에 더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과수원을 줄이고 관상수를 비롯, 우리 고유 나무를 심었고 이어 우리 토종나무에 대한 연구 및 개발, 보급에 앞장서는 한편 지역의 노거수(老巨樹)보호 운동에 발벗고 나서게 된다.

그가 10년째 회장으로 있는'노거수회'란 단체는 이제 나무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나무와 환경보호에 관심이 있는 지역의 지도급 인사 15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도 있다.

"세계적인 문호인 펄벅여사가 일본 여행중 '만약 일본 대륙이 바다속으로 잠긴다면 가장 먼저 피난시켜야 할 보물이 바로 미륵반가사유상'이라고 탄식했는데 그 미륵상을 만든 재료가 바로 신라때 건너간 춘양목이라 불리는 강송(剛松)입니다"그는 울진 불영계곡을 거슬러 태백산맥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울진군 서면(西面) 소광리 깊은 골짜기에 보물이 숨어 있다고 했다. 다름아닌 높이가 30, 40m에 이르는 100,150살 고령을 자랑하는 강송, 춘양목이 운좋게도 얼마정도 남아 있다는 것그는 또 울릉도를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식물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릉도에는 제주도마냥 섬과 육지 기후가 고루 나타나기 때문에 다양한 나무와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훌륭한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울릉도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식물 보고(寶庫)가 되고 국내·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됩니다"

이 원장은 현재 식물원 부설기관으로 한국생태조경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우리의 고유 나무를 비롯, 각종 자생 식물들의 생태를 연구, 특성과 장점을 살려 수준 높은 조경 문화를 창출하고자 설립 한 것.

서울농대 후배이자 사위인 강기호(35)씨가 현재 연구소의 연구개발부장으로 있는 한편 이 원장으로부터 식물원 후계수업을 착실히 배우고 있다.

이 원장의 바람은 우리 국민들이 우리 고유 식물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 아끼고, 가꾸는 것. 그는'기청산 식물원'을 통해 그 꿈이 조금이라도 앞당겨지길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

- 林省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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