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어느 공무원의 세계여행

동서고금을 통해 여행을 예찬한 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해즐릿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일 중의 하나가 여행'이라고 했다. 안데르센은 '정신이 도로 젊어지는 샘'이라고 했으며, '정신의 편력은 경험의 편력과 맞먹는다. 여행의 양(量)이 곧 인생의 양이다'라는 말도 있다. 시인 김기림은 '태양의 풍속'이라는 시에서 '세계는/나의 학교/여행이라는 과정에서/나는 수없는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유쾌한 소학생이다'라고 노래했다.

'무미건조한 생활을 벗어나 세계 여행이나 떠날 수 있었으면…', '퇴직금으로 지구촌을 한 바퀴 돌아 봤으면…'. 샐러리맨들이 흔히 가질 법한 꿈이다. 하지만 대부분 '백일몽'이며, '시간이 있으면', '돈만 있으면' 하는 토가 달리면서 물 건너가기 십상이다. 더구나 일상에 쪼들리는 서민들에게는 '강 건너 등불'일 따름이다.

서울시의 40대 국장(부이사관)이 19년간 다닌 직장에 무급휴직계를 내고 가족과 함께 1년간 세계 일주 여행길에 오른다는 보도는 공무원은 물론 샐러리맨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공무원으로서는 처음인 이 '작은 반란'은 스스로 밑천(아이디어)이 바닥났다고 판단한 자신의 재충전과 공부 경쟁에 찌든 자녀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결행이라니 더욱 그렇다.

더구나 그의 5대륙 일주 여행의 꿈은 호사스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결혼 15년만에 어렵게 장만한 전세아파트(9천만원)의 전세금을 빼내 그 비용을 충당하며, 여행 뒤의 생계는 그때 가서 걱정하기로 했다는 말이 그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무튼 그는 전례가 없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행정절차를 거쳐 이 '모험'의 길을 나서게 됐다.

누군가 '모두 벗어 던지고 떠났던 여행이 돌아올 때는 다시 모든 것을 찾게 했다'고 했다. 이는 '떠남이 곧 귀로'라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일찍이 괴테는 '여행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여행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며, 루소는 '여행에서 배우는 것이 독서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성씨 가족의 '모든 것 벗어 던지기'식 세계 여행이 '다시 더 큰 것 찾기'의 모험이기를 바란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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