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 한경직 목사의 삶

19일 세상을 떠난 한경직 목사〈사진〉는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러 왔다'고 외쳤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한 성직자였다.첫 목회지였던 신의주에서 10년간 시무하는 동안 고아원을 설립, 버림받은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돌봤던 한목사는 목회활동외에도 이웃을 돕는 삶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45년 월남, 서울에서 고아원과 경로원, 모자원 등을 설립했으며 홀트양자회 이사장을 지내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했다. 또 미국인 피어스목사와 함께 '선명회'를 만들어 전쟁과 빈곤으로 눈물짓는 세계인들을 도왔다.

한목사는 또 90년에는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을 주도하는 등 남을 돕는 생활을 계속했으나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냉혹하리만큼 인색했다. 한국 개신교 최대규모 교회 중 하나인 영락교회를 일궈냈으면서도 평생 본인 명의의 집 한 채, 통장 1개조차 소유하지 않은 청빈의 삶이었다. 건강이 악화됐던 만년에도 영락교회의 20평짜리 수양관에서 사위 이영묵목사 내외와 함께 지냈다.

이웃을 도왔던 '사랑'의 정신때문에 받았던 '템플턴상' 상금 102만달러도 고스란히 교회에 전달, 이웃돕기와 선교활동에 쓰이도록 했다.

'건국과 기독교' '한경직 목사설교집' '내일을 사는 인생' '예수를 바라보자' 등 활발한 저술활동도 폈던 한목사는 주위에서 권했던 자서전 출간만은 '자기 합리화가 된다'는 이유로 끝내 마다했다. 눈 감는 날까지 철저히 낮은 자의 삶을 살았던 것.

개신교 목회자들은 "한목사는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속에서도 신앙을 통해 나라를 일으켜 세웠던 분"이라며 "한목사의 청빈과 신앙정신을 모든 교계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본받아 한국교회 갱신과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崔敬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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