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역사를 기록한 관청은 춘추관(春秋館)이다. 그 관원은 중앙정부 주요기관의 관리가 겸임하였는데 주무를 맡은 예문관(藝文館) 관리 8명을 사관(史官) 또는 한림(翰林)이라 불렀다. 사관은 6품이하 품계였지만 조정의 일상행사는 물론이고 중신회의, 임금과 신하의 독대에 참석하여 그 내용을 샅샅이 기록했다.
임금이 승하한 뒤 실록청(實錄廳)이 설치되면 사관들은 집에 보관해 둔 사초(史草)를 내다바쳤다. 실록청은 사초를 근거로 초초(初草), 중초(中草)에 이어 정초(正草)인 실록을 완성했다. 세종.세조 등의 임금은 실록으로 했지만 왕호를 박탈 당한 연산군.광해군 등은 일기(日記)로 편찬했다. 유교의 대의상 왕자급인 군(君)을 왕과 같이 예우할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
대한민국 건국 후 역대 대통령들의 역사를 기록하면 그것은 실록이 될까, 일기가 될까. 국부(國父)로 숭앙받아야 할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말년의 부정부패와 독재가 흠이다. 5대 박정희대통령 역시 독재자라는 이미지가 실록의 빛을 가리고 있다. 11대 전두환대통령도 반정과 독재의 그늘을 피하기 어렵다. 13대 노태우대통령은 반사회범으로 몰린 터여서 실록과는 거리가 멀어진 느낌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그 흔한 대통령기념관이 없다. 동상의 주인공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90년대에 건립된 동상인물을 보면 세종대왕, 정조대왕, 이순신 장군, 강감찬 장군 등 역사인물이 앞을 차지한다. 애국지사로는 김구, 나석주, 김상옥 선생이 눈에 뛴다. 근대인물 중에는 김병로, 김홍섭, 최대교 등 법조삼성(法曹三聖)과 국학자인 정인보, 김윤경, 최현배, 홍이섭 4인, 한국 영화계의 선구자인 나운규,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 등이 명단에 오른다. 역대 대통령들이 여기서 제외된 것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우리 근대사가 통절히 잘못됐음을 시사하는 일이기도 하다.
◈기념관뿐 아니라 동상도 없어
그러나 이러한 역사관이 잘못됐다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주외교와 낭만적 민주관을 심어준 점에서 초대 대통령으로서의 몫을 다했다는 시각이 그 하나다. 박정희 대통령은 근대화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개발독재로 국가중흥을 이룩한만큼 역사적 사면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 그 둘이다.
요즘 구미의 시민단체인 구미사랑운동본부가 국내 최대의 박정희 대통령 동상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논란은 운동본부가 박 대통령을 조국근대화의 영도자라는 입장에서 보고 있는 반면 일부 사회단체들은 독재자라는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어느 쪽 주장이 맞고 틀리고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찬반 논의와 관계 없이 동상건립의 당위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거리다. 이는 역사의 큰 줄기로 보아 박 대통령이 독재자로서 보다 근대화의 주인공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전대통령 기념관건립 논란
그런 증좌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박 대통령이 가장 존경받는 한국의 인물에 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구미시 상모동 생가가 연간 참배객 20만의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점도 예사롭게 볼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 98년 충북 옥천에 육영수 여사의 동상이 건립된 사실도 의미하는 바가 있다. 며칠 후 이승만 대통령(동상)이 초대 국회의장 자격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등장하는 역사적 변천도 시사점을 남긴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박 대통령 동상건립은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고인에 대한 역사적 귀결이 완성되지 않은만큼 그 건립을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어정쩡하게 남겨둔 생가 보존작업을 마무리해 참배객들의 관심에 부응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한다. 생가에 박 대통령이 썼던 앉은뱅이 책상과 등잔대 하나만 달랑 전시해 놓은채 국내 최대규모의 동상을 건립한다는게 어쩐지 낯 간지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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