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더불어 배운다-현장학습 멀리서 찾지 마세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치른 시험지를 가져왔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 보기 중에서 다 익었을 때 붉은 색이 아닌 과일은?'이라는 문제에 '감'이라고 답하여 틀린 것이다. 간혹 교외로 나가 감이 달린 감나무를 본 적이 있지만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아이의 눈썰미 없음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깊게 반성했다.

그 당시 도시라고 하지만 사는 곳이 범물동이어서 남편과 나는 계절에 관계없이 일요일이면 거의 동네 앞산인 용지봉을 오르고 있었다. 딸아이의 시험에 충격을 받은 이후 우리는 아이와 함께 일요일이면 식물도감을 들고 다니며 용지봉 주변의 야생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다소 무심하던 아이도 점차 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나무 이름도 잘 외우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우리 가족은 용지봉 주변의 야생화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더욱 감사한 일은 딸아이가 자발적으로 관찰한 사실을 글로 기록하는 습관도 가지게 된 것이다.

세월은 너무나 빨리 흘러 딸아이는 벌써 중2가 되었고 이제 일요일에도 산에 못 따라오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남편은 친구나 후배의 어린 아이들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야생화를 가르치는데 아주 열성적이다. 지난 달 초 남편은 후배 부부와 아이들을 노루귀 군락지로 초대했다. 며칠 전부터 봄과 관계되는 시를 복사하고 사계절 내내 들꽃을 찾아볼 수 있는 책을 마련하는 등 혼자 흥에 겨워 열심히 준비를 했고, 당일날 우리는 네 살짜리 꼬마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아이와 어른 십여명을 데리고 산등성이를 헤매고 다녔다. 용지봉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 하산했을 때의 나른한 쾌감. 그날 모두가 너무너무 행복해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깽깽이풀 군락을 발견하고는 너무 기뻐서 남편과 함께 즉시 후배들을 불러 산으로 갔다. 다소 힘들었지만 그리도 좋아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다가오는 어린이날에는 성급하게 핀 뻐꾹채와 무리지어 피어 있는 붓꽃, 작은 꽃망울이 너무 예쁜 봄구슬봉이, 곧 피어날 은방울꽃 군락을 보러 가야겠다.

관심만 가지면 우리가 사는 주변 모두가 자연 학습장이 될 수 있다. 가족, 이웃, 또는 가까운 친구와 함께 봄 산행을 해 보자.

〈추태귀·상주대 의상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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