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경렬 세상읽기-냄비의 물이 끓다가 식듯이

사교육비가 주는 부담과 공교육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4월 말 과외 금지는 위헌이라는 헌법 재판소의 결정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일기 시작한 교육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는 가히 '해일(海溢)급'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물론 헌번재판소의 이번 결정이 법리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하는 측도 있었고, 초.중.고교생 절반이 과외를 하고 있는 현실을 새삼스럽게 개탄하는 측도 있었다. 또한 헌법 재판소의 이번 결정에 대비하여 대안이 없었던 교육부를 질타하는 측도 있었고, 교육 예산이 국민 총생산 대비 6%에 훨씬 못 미치는 현실을 비판하는 측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어조로 사교육의 팽창과 함께 학교 교육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붕괴될 것임을 예견하기는 이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실로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교육의 위기를 우려하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듯 하였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 나라 교육과 관련하여 언론 매체들이 내보낸 각계 각층의 의견이나 기획 기사를 보면 확연하게 느껴진다. '아! 학교…'라는 기사 제목에서나 '이젠 공교육을 살리자'라는 기사 제목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탄식을 읽기도 하고 또한 결의를 읽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이른바 국방부 사업 관련 로비 의혹 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와 더불어 국민의 관심은 어느 한 여인의 행적과 이를 둘러싼 각종 보도로 옮겨간 듯하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공교육'에서 누군가의 '사생활'로 옮겨간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른바 '고액 과외'의 기준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이제 교육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그 열기를 잃고 이전수준으로 돌아간 듯하다. 마치 냄비의 물이 갑자기 끓어오르다가 갑자기 식어버리듯이.

물론 고액 과외 규제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증명하듯 사람들의 관심이 교육에서 떠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육에 대한 관심을 냄비의 물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고 불평하면서.

하기야 과외 허용이 우리의 현실이 된 이상 이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려는 노력은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액 과외 규제에 대한 논의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간단없는 '해일급'에서 이제 다시 간헐적인 '분출급'으로 바뀌었다고 하면 어떨까.

관심이 '냄비의 물'과 같든, '해일급'에서 '분출급'으로 옮겨갔든, 궁극적으로 문제삼아야 할 것은 당면 문제를 풀어가려는 의지의 질적 수준일 것이다. '규제'라는 소극적 대처 방안이 암시하듯,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는 거의 언제나 임시 방편적이거나 지엽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를 증명해 주는 것이 헌법 재판소의 결정 이후 어느 자리에서 나왔던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아닐까. 저소득층 자녀에게 사교육비 지원을 검토하겠다니? 문제 해결의 의지가 또 다시 임시 방편적이고 지엽적이라는 느낌을 갖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비판의 화살은 관계 당국의 몫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한참 과외 허용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 어느 신문을 보니, 누군가가 "과외요? 서울대가 문을 닫으면 저절로 가라앉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죽이나 답답하면 그렇게 말했겠냐 만은, 교육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나오는 의견이 이런 식의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서울대가 문을 닫는다고 과연 문제가 해결될까. 사람들의 정신이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서울대'의 출현은 필연적인 귀결이고, 따라서 '서울대가 문을 닫으면'과 같은 발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다. 무릇 일체의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정신의 소산이니, 어찌 정신을 바꾸지 않은 채 세상이 바뀌기만 바라는가.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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