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우리대표단의 무기력증

8일 오후 남북회담사무국에 도착한 우리 측 대표단의 모습은 안절부절 그 자체였다. 기대를 모았던 4차 준비접촉에서의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탓이다. 박재규 통일부장관도 회담결과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다음 접촉을 지켜봐 달라"며 궁색한 답변만 했다. 대신 "16개 항목 중 한 두가지를 제외하고는 다 합의됐다"며 "대표단의 노고를 인정해 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합의가 무산된 것은 우리 측 보다 북측 태도 때문이라는 뉘앙스가 풍겼다.

물론 남북회담의 성격상 우리 측의 애로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획일화된 1인지배구조의 북한과 달리 우리 측은 신경써야 할 데가 한 두 곳이 아니다. 정상회담의 주체는 대통령 1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반세기 동안의 반북(反北)이데올로기와 국회, 언론 등 여론에 늘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혼재해 있는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매는 맞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측 협상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뭔가 아쉬운 듯 끌려다니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문제가 된 취재기자단의 수만 해도 그렇다. 우리 측 주장인 80명선은 이미 지난 94년 정상회담 준비때 합의됐던 사안이다. 6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취재진을 더 늘려도 시원찮을 판에 북측의 축소요구에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지난 6일 대북 비료지원 발표도 석연찮다. 순수 인도적 차원의 결정이라고 했지만 대북 비료지원 발표가 준비접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우리 측의 공통된 기대였다. 그러나 이날 접촉결과 대북 비료지원 약속도 전혀 약발이 먹혀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너무 서두른 느낌이다.

정상회담을 처음 발표했을 당시는 총선용이라는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민족적 숙원앞에 이 정도의 흠은 용인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뚝심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는 대표단의 모습에 이같은 기대도 사그라들고 있다. 이상곤(정치2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