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허균의 사찰장식-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산사에 가면 부처님을 향한 종교적 염원과 옛 사람들의 미의식의 바탕을 읽을 수 있다. 저마다 상징성을 품고 있는 장식문양과 다양한 조형물들. 일승법문(一乘法門)을 상징하는 일주문에서부터 법당 전면 기둥에 솟아 있는 용과 법당 도처에 장식된 연꽃문양, 현존하고 있는 부처님의 상징형인 탑에 이르기까지 때로 장엄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고 친근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이자 문화재 전문위원인 허균씨가 쓴 '사찰장식-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돌베개 펴냄)에는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 건축물 등을 통해 지상에 불국세계를 펼치고자 했던 불자들의 염원과 중생들을 향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롯이 담겨 있다. 5년 넘게 전국 250여개 사찰을 답사, 모든 유형의 세계에 숨겨진 상징의 의미를 살폈다. 여느 책처럼 그 의미를 불교미술사적 관점으로만 좁혀 놓지 않았다. 인도와 중국, 한국의 전통사상과 신화, 민간설화, 그리고 불교 경전을 넘나들면서 역사적, 종교적 관점을 교차시켜 그 안에 담긴 상징의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사찰은 신비한 장식문양의 보고(寶庫)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의 불단. 초현실적인 장식문양들로 가득한 이 불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단으로 손꼽힌다. 불상을 직접 모시는 자리인만큼 불교적인 상징들이 한데 어우러져 가히 불교 장식문양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각양각색의 신비스러운 이 문양은 물고기를 제외하면 모두 상상의 새와 동물들이다. 표면적으로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감성이나 쾌락이 배제된 숭고미가 잠재되어 있다. 저자는 이 불단에서 수승(殊勝·세상에서 가장 뛰어남)한 부처님과 그의 자리를 장엄하게 꾸미기 위한 불자들의 종교적 열망과 신심을 찾아낸다.

고승의 부도나 와당, 불단 등에 새의 몸과 사람 머리를 한 상상의 새 '가릉빈가'(극락조).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모습이 어린애처럼 귀엽고 정겨운 느낌이다. 불국정토로 인도하는 사찰의 수호신 용과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는 벽사의 화신 귀면이 보이는가 하면 일체의 거리낌을 여읜 바람에 몸을 맡긴 풍경은 부지런히 마음을 닦으라고 경책한다.

닫집(唐家)은 화려함과 장엄의 극치를 이룬다. 섬세하게 짜여진 공포와 화려한 장식, 허공에 매달린 기둥은 얼른 보아도 화려한 궁전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다포계의 섬세한 포작 기술을 총동원한 닫집에 대해 용과 극락조, 연꽃 등의 화려한 장식을 한 천개(天蓋)로서 신성하고 숭고한 천상세계인 불국정토의 개념에 실재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렇듯 사찰에는 자연을 닮은 색과 선의 조화 속에서 창조된 다양한 장식문양과 신의 형상을 닮은 조형물, 그리고 그 신이 머물 수 있도록 지어진 건축물들이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문살과 단청, 돌탑 모서리에도 깊고 오묘한 상징의 세계가 담겨 있고,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지 않는 당우 뒤쪽이나 다리 밑 구석진 모서리에도 그 특유의 화려함과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다.

徐琮澈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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