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벗따라 길따라-풀무회 차덖기 여행

내 삶은 어떠했던가?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인가? 이런 생각이 찾아들기 시작하는 나이 마흔 중반쯤이면 더없이 소중해지는 것이 친구. 초교·중학교 동창회로 많이도 몰려드는 것 역시 그들이다.

서로다른 세월을 살아온 오십대 중년들이 친구로 모여 서로의 추억과 고향문화를 나누고 체험하려 나섰다. 이름하여 '풀무회 회원들의 세상 기웃거리기'. 지난 주말 이들이 택한 행로는 차(茶) 덖기 여행.

기자도 동행해 함께 5월의 햇살을 받으며 자동차를 달려 전남 구례 지리산 피아골 불락사 절에 닿았다. 대구를 출발, 꼬박 3시간20분 걸린 거리. 만나면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으레 서로를 찾았던 풀무회 회원들. 십년지기인 이들도 전에는 회색 도시의 허름한 술집 구석에 비집고 앉아 밤을 새우던 보통 술꾼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일에 더 신 나 한다. 이들의 첫 '친구끼리 여행'도 이 절에서 같은 일로 시작됐었다. "벗들과 어울릴 수 있어 좋고, 모른채 지나칠뻔 했던 전통 문화를 배울 수 있어 더 좋습니다". 김일환 회장의 말이다.

이곳 불락사 전통차 덖기 행로를 소개한 회원은 장명화씨. 그는 이분야 경력 15년의 '전문가'이다. "차를 덖을 땐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셔선 안됩니다. 특히 화장한 여자는 작업장에 절대 출입해서 안되지요". 찻잎을 잘 덖고 잘 비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잡냄새가 스미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모두가 벌써 두 번씩이나 차덖기 경험을 가졌다지만, 그의 얼굴에선 불안한 빛이 여전했다.불락사 인근의 야생 찻잎은 ㎏당 3만원 내외, 절 차밭에서 따낸 찻잎은 2만원이었다. 생찻잎 1㎏을 덖고 비비기를 거듭하니 200g 정도의 전통차가 나왔다. 이정도 품질을 시중에서 사려면 8만∼9만원이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귀띔해 줬다.

모두 여덟명인 회원들은 한두가지씩 장기를 가졌거나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오래된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십을 넘긴 사람들이니, 내놓을 추억이 푸짐한 것이 어쩌면 당연할 일. 권기덕·권시환·권혁문 회원에겐 밤새 자랑하고도 남을 만큼 대단한 문중이 있었다. 총무 김선오씨에게선 밤새우고도 남을 아름다운 고향 울진 이야기가 있었다.

친구들은 지난 1월엔 제주도 전통 마을을 답사했고, 3월엔 봉화 닭실 마을을 찾았다고 했다. 오는 여름엔 경주 남산으로 떠날 계획. 그곳에 핀 들꽃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후에는, 경남 쌍책을 찾을 작정이다. 권대용 회원의 어린 시절 '죄과'를 하나하나 파헤쳐 보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회원'이 아니었다. '풀무회'도 회가 아니었다. 일부러 테마를 만들거나 약속을 정해 만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함께 만나니 좋은 사람, 좋은 추억, 맛있는 음식이 저절로 생기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은 술잔을 들었다.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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