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정부가 가야할 길

어느날 문득 무슨 느낌이 턱 와닿는 때가 있더라. 요즘 같던 어느 봄날 새벽 4시쯤. 마당으로 내려 섰다가, 앞산에서 울고 있는 소쩍새 소리를 만났다. 또 그 중간중간을 채우는 외침도 들었다.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아마도 능선 어디엔가 도착했음에 스스로 대견해 하는 그 생명의 소리.

잇따라 산사(山寺)의 종소리가 미망을 흔든다. 그럴 즈음 어느덧 날이 희뿌여지고, 우리집 마당에서도 새들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찌직 째잭 찌찌…. 이쯤되면 둔한 기자도 드디어 영혼 깊숙한 곳으로부터 참희열에 빠진다. 비록 대지 45평의 방 두칸짜리 집이지만, 앞산 끝자락을 50m쯤 두고 움막 친 덕분에 누리는 복이다.아! 그런데 그때 오던 그 어떤 엉뚱한 느낌!

지금부터 10여년 전. 기자생활을 시작한지 10년쯤 돼 나름대로 철이 들었다고 여기던 때, 그때 기자는 한가지 '깨침'에 당도했노라 여겼었다. '지역진흥'이라는 개념을 발견해 내고는, 지방정부 할 일이 바로 그런 것이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시시해 보일 이런 느낌 조차, 우둔한 기자로선 많은 애를써서 한달여 동안이나 일본 구석구석을 취재한 뒷끝에 어렵사리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역진흥'에 대한 신봉은 앞산의 새소리를 만난 뒤 바뀌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나 그 가장 명료한 존재의 첫째 목적은 국민과 시민을 안전하게 하고, 다음은 평화롭고 편안케 함으로써, 종국적으로는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출발점이 바로 살만한 환경의 조성일 터.

이렇게 되니 전혀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얼마전 신문 외신면에 실린 일본 정부의 대국민 캠페인 '하루 1천 걸음을 더 걸읍시다'가 기자를 흥분케 했다. 건설과 공단 만들기 같은 것이야말로 중요해 보이던 전 같으면 "무슨 허세 부리는 거야!" 하고 코웃음 쳤을 얘기. 하지만 내가 변하고 나니 느낌도 같이 갔다. 아! 이것이 바로 된 정부가 할 일인 모양이구나! 시민들의 건강을 병원에만 맡겨놔선 되는 것이 아니구나, 어쩌면 그들이 제대로 결혼은 하는지도 살펴야 하겠고, 취업이 어떻게 돼 가는지 가정 방문해 보는 것이 시장의 가장 큰 임무가 될 수도 있겠구나….'지역진흥'도 물론 국민의 '행복'을 조성키 위해 필요한 방편일 것이다. 그러나 수단이 목적일 수는 없다. 존재의 목적을 제대로 정립하는 것은 특별한 문제이다. 그게 올바르게 돼야 다른 곁가지 문제들에 헷갈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친절 문제만 해도 그럴성 싶다. "우리의 존재 목적이 시민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 있다"는 인식에만 도달한다면, 나이든 공무원들 붙잡고 초교생에게나 적합할 모욕적인 친절 교육을 시킬 필요가 어디 있을까?

기자는 얼마전 고향 군청으로부터 통고장을 하나 받았다. "길 내는데 당신 땅이 들어가야 하니, 무슨무슨 서류를 떼 며칠까지 군청으로 와서, 우리가 정해놓은대로 땅값 받아 가라"

세상에! 우리가 아직도 이러고 있었던가? 저들이 언제 나한테 땅 팔겠냐고 의논 한마디 한 적 있었나? 그깟 서류들도 자신들이 떼면 되는 것들 아닌가! 값은 왜 제맘대로 정해 놓고? 그런데도 어찌 제 군민을 개 부르듯 하는가?

그 통고장이 다음과 같이 바뀌는 날이 와야 우리 정부도 비로소 제 존재 목적을 제대로 알아차렸다 싶을 수 있으리라. "길을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낼까 싶습니다. 선생님의 땅이 필요하니 도와 주십시오. 다른 서류는 저희가 다 해 놓을테니, 언제 시간이 나실지 알려만 주신다면, 찾아 뵙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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