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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최은숙(대구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퇴근무렵 다급한 목소리의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편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관은 도망치는 남편을 잡을 생각도 않고 가만히 두고보기만 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가정폭력 방지법 제정 이전에도 폭행을 견디다못해 여러번 신고를 했지만 남편을 두둔하거나 오히려 부인이 남편의 비위를 못맞춘다며 비난만 하더라고 했다.

물론 법 개정 이전에는 사생활 불가침 원칙에 의해 경찰관은 사적 영역인 가정사에 전혀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에는 가정폭력을 제지하거나 사건 관련 수사권에 있어 과거에 비해 한결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가정폭력 사건에 있어 남편을 두둔하거나 오히려 부인을 비난하고, '남의 가정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남아있다. 앞의 사례와 같이 신고에 의한 형식적인 출두와 사건처리 절차만을 간단히 알려주는 등의 미온적인 태도도 큰 변화가 없다.

가장 사랑받고 위로받아야 할 대상인 남편으로부터 모욕적인 구타를 당하는 부인의 심정을, 주변 친인척으로부터 도움을 청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제3의 기관인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때의 그녀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최소한 형식적이거나 사무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의 적극적인 의지는 피해여성에게는 그 어떤 위로나 격려보다 힘과 희망이 되며, 가해 남성에게는 위협이 돼 일정 부분 폭력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산적한 강력사건들에 비해 가정폭력사건은 자칫 경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폭력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폭력의 모델을 보임으로써 또다른 폭력의 악순환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근절돼야 마땅하다. 피해여성들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신고한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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