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개발이 한창인 무렵 한 도굴꾼이 신라금관을 고분에서 훔쳐낸 적이 있었다. 내로라 하는 전문가조차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금관을 찾아낸 이 도굴꾼의 수법은 기발했다. 아예 유물이 있음직한 언덕 옆의 집에 전세를 들어 밤중에 몰래 땅을 파고 도굴했으며, 수사망이 좁혀지자 금관을 녹여 증거를 없애려다 미수에 그쳤다. 지금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교동 신라금관'이 바로 그 도굴문화재로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하다.
문화재 도굴꾼은 수많은 '실전' 경험을 밑천으로 삼고 있으며, 산세만 보고도 유물들이 묻혀 있는 곳을 직감하기도 한다. 지난 1996년 경주 흥덕왕릉 도굴범도 '산세만 보고 도굴 위치를 잡았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이같이 문화재 도굴은 전문지식과 도굴기법 등 고도의 테크닉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전문가 수준을 능가하는 경우마저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19일 오후 3시쯤 경북 경주시 강동면 오금리 산56 일대의 신라 6~7세기경 유적으로 추정되는 석실분 및 석곽분 50여기가 도굴됐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있었다. 경주시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확인한 결과 대규모 도굴이 이뤄진 사실을 밝혀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지만 답답하기 그지없다.
지난 1997년 문화재 지표조사로 발견된 이 고분군은 경주시내에서 20km 가량 떨어진 야산의 숲속에 있고 봉분의 형태가 뚜렷하지 않아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문화재 지정만 해놓고 재정이 어려워 경주시에 맡겼으며, 감시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경주시도 손을 놓고 있다 당한 경우지만 우리의 문화재 보존.관리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예에 다름 아니다.
도굴은 여전히 교묘하게 성행하고 있으며, 고미술 수집붐도 무작위 도굴을 부르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우리나라 고분 가운데 도굴이 안 된 것은 불과 2~3%밖에 안 된다고 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경주마저 이 지경으로 방치되고 있다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단의 도굴 방지 대책을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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