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집권후반기 국정운영 '새판짜기'

국정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박태준 총리가 사퇴함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은 향후 정국구상의 청사진을 새롭게 짜야할 상황에 처해졌다. 과연 어떤 그림이 나올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사실 지난 4·13총선 이후 여권내 대대적인 정비와 분위기 쇄신의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동서화합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또 집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가운데 과반수의석 실패로 총선을 끝낸 상황이어서 국정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할 시점을 맞았다. 다만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여권개편이 순연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두 가지 큰 변인이 추가로 발생했다. 하나는 김 대통령과 상당기간 함께 갈 것으로 예상됐던 박태준 총리의 조기 하선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제2 경제위기론'이 나올 정도로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경제부처 장관들에 대한 책임론이 확산되는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로 정가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청와대와 내각의 대폭 물갈이를 더욱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인사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권내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국운영에 협조가 필요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는 아직도 애를 태우고 있다. 청와대는 새 총리 임명을 계기로 김 명예총재와 공조를 다시 꾀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나 그는 "새 총리를 추천할 의사가 없다"며 요지부동이다. 부득이 여소야대정국을 타파하기 위해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의 입당교섭과 한국신당 김용환 중앙집행위원장의 총리 발탁 구상 등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경제상황이 괜찮다고 진무하고 있으나 국내외 경제전문가 진단은 다른 시각이다. 하반기 들어가면 더욱 악화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 계속 나와 김 대통령의 마음을 누르고 있다. 새 총리에 초당적인 경제전문가가 기용될 것이란 추측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당장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 힘을 쏟아야할 형편이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를 계속 낮추는 것도 앞으로 정국운영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듯하다.

김 대통령은 총선이 끝난 뒤 향후 국정방향을 경제개혁의 지속, 남북화해와 협력 추진, 동서화합 노력, 정보화사회 실현으로 압축한 바 있으며 '제2의 개혁'의 깃발을 막 올리려던 참이었다. 박 총리의 즉각적인 사표수리도 이런 흐름을 깨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도 "김 대통령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조기 퇴진시켰다"고 설명했다.

김 대통령이 여소야대 등으로 집권초기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많은 난제를 어떻게 풀지 정가는 주시하고 있다.

李憲泰기자 leeh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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