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복칼럼-부끄러운 상층

어느 나라든 상층이 있다. 자유.평등이 인류보편적 이념이고 소망이라 해도 현실적으로 인간은 불평등한 계급을 이루며 살고 있다. 그 불평등을 가장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 상층이다. 이 상층을 없애려고 볼셰비키 혁명도 일으켜 봤지만 '노맨클라투라'라는 더 위세등등한 '붉은 귀족'만 만들어냈다. 자유보다 평등을 기간(基幹)으로 하는 이 공산주의 사회도 공산당 간부 스스로 상층이 되고 귀족이 된 것이다.

문제는 상층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이 상층이 갖는 사고며 행태(行態)다. 앵글로 색슨족의 상층은 2개의 행위지침을 갖는다. 하나는 '너를 위해서는 안돼(not for yourself)'이고, 다른 하나는 '더 이상의 권리주장은 안돼(claims no more)'이다. 철저히 '베푸는 상층''희생하는 상층''남을 위한 상층'이라는 도덕적 의무감을 갖고 있다. 이 높은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감과 도덕적 행위수행을 그들은 '노블레스 오브리지(nobless oblige)'라 한다.

이 '노블레스 오브리지'를 갖지 못한 상층을 '뉴 리치(new rich)','뉴 하이(new high)'라 해서 '양반 상층'과 엄격히 구분한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졸부(猝富)와 졸귀(猝貴), 곧 벼락부자.벼락감투라는 뜻이다. 소득이나 재산, 그들이 쥐고 있는 막강한 권력으로 봐선 분명히 이 졸부.졸귀도 일반서민과 명백히 구분되는 상층이지만 도덕적 의무감이 전혀 몸에 배여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상놈 상층'이라는 것이다.

'상놈 상층'의 대표적 행위가 오로지 '자기 자리를 위해서''자기 부(富)를 위해서'다. 남을 위해서 희생할 줄 모르고 양보할 줄 모르고 오로지 자기만 챙기는 행위다. 근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세풍.병풍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세금을 안내볼까, 어떻게 하면 병역을 면해볼까를 우리 사회의 경우 못사는 서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잘사는 상층이 하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지탄됐지만 16대 국회의원 출마자의 73%가 세금을 한 푼도 안냈거나 생활보호대상자나 다름없는 100만원 이하를 낸 사람들이다. 분명히 지위상으로는 상층인데 세금은 중하층의 서민보다 훨씬 적게 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16대 지역구 당선자의 25% 이상이 병역면제자가 돼있다. 이 또한 중하층의 일반서민 병역면제자(4.3%)의 6배나 된다.

이야말로 '어려운 것 불리한 것은 내가 하고, 쉬운 것 유리한 것은 남에게 준다'는 서구 상층의 '선난후획(先難後獲)'정신과 너무 대조적으로 구분된다. '좋은 것은 상층인 내가 하고, 나쁜 것은 너희 서민들이 모두 가져라'가 우리 상층이다. 잘못이 들통나서 감옥에 가도 대통령사면으로 곧 풀려난다. 뇌물죄로 기소된 공무원의 88%가 집행유예 아니면 선고유예다. 공무원이라고 상층은 아니지만 기가찰 노릇이다. 논어에 '졸부귀불상(猝富貴不祥)'이라는 말이 있다. 졸부와 졸귀는 언제나 상서(祥瑞)롭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도 '양반 상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치지 않는다'는 말이 시사하듯 엄격한 도덕률이 우리 양반들에게도 있었다. 물에 빠졌을 때, 더구나 헤엄을 치지 못할 땐 누구나 생사기로에 놓인다. 죽느냐 사느냐가 목첩에 다다랐을 때 개헤엄 아니라 그보다 못한 헤엄을 치고도 살아나야 한다. 그것이 보통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양반 상층'은 다르다. 개헤엄치고 살아났을 때 '당신, 개헤엄치고 살아났지?'하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치소를 머금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하는 것이 '양반 상층'의 생각이며 행동이다. 수치를 죽기보다 더 두려워한 사람들. 의(義)가 아니면 밥을 굶어도 이(利)를 취하지 않는 사람들. 그 추상열일(秋霜熱日)과도 같은 도덕성에 살던 사람들이 바로 '양반 상층'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상층은 그런 의식도 없고 그런 의지도 없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감은 더더욱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되고 보자''갖고 보자''차지하고 보자'가 그들의 습성화된 행태다. 천민도 그보다 더 지나칠 수 없다. 최근 부동산 명의신탁으로 물의를 일으켜 사퇴한 박태준 전 총리를 보며 우리 상층은 언제 서구 상층처럼 '양반 상층'이 될까를 생각한다.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 부끄러운 시대에 살아야 하나.

연세대 교수.사회학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