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직은 살맛나는 세상

화사한 봄날은 간곳없고 하늘이 잔뜩 찡그린 시선을 보내던 지난 16일 오후였다. 네살배기 딸아이와 쇼핑을 하러 시내 중심가로 나왔다. 그 날 따라 심하게 보채는 아이를 얼러가며 간신히 볼일을 끝내고 910번 시내버스를 탔건만 이게 웬일인가.버스에 올라 가방을 보니 쟈크는 열려있었고 지갑은 온데 간데 없었다. 아뿔사. 먹구름 잔득낀 하늘은 이미 노랗게 변해있었고 심장은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마구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당한 소매치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출소'라고 간판이 붙은 곳으로 들어갔다. "조심성이 없으니 그런 일을 당한다"며 면박을 주는 버스 기사 아저씨를 뒤로 하고 대구 중부경찰서 동산파출소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또 이 곳에서는 어떤 구박을 받아야할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내 생각이 너무 구시대적 사고였던가. 불쑥 들어간 파출소의 경찰관은 놀라 정신이 없는 나를 대신해서 은행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통장과 카드분실신고를 직접 해줬다. "본인도 아니면서 왜 분실신고를 하느냐"는 은행직원의 싫은 소리까지 들어가면서까지.

게다가 현금을 모두 잃어버린 내게 "차비가 있어야 집에 갈 것이 아닙니까"라며 돈까지 챙겨주는 것이었다. 며칠 후 수소문을 통해 이 경찰관이 동산파출소 김해수(경사) 부소장이란 사실을 알게됐다. 태어나 처음으로 '치안서비스'를 직접 받게된 나에게 김 부소장은 '바르고 따뜻한 경찰의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소매치기는 당했지만 고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가고 있는 경찰상을 현장에서 체험한 하루였다.

배순옥(29.주부.대구시 대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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