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리뷰-자유의 의미
액톤 경(Lord Acton)은 인류 사회를 뒤돌아볼 때 인간은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에, 루소는 점점 더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자유'라는 말을 이해하는 이 두 사람의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액톤 경은 자유라는 말을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자유, 질병과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 무지와 미신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반면에 루소는 유럽 문명의 소산인 정치 사회 제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따라서, 루소가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은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생활방식으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했다.
모리스 크랜스턴(Maurice Cranston)은 액톤 경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진보파'라고 부르고, 루소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낭만파'라 불렀다. 진보파와 낭만파는 같은 '자유'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의미하는 바가 각기 달랐다. 양쪽은 서로 다른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파는 발달된 정치제도를 통해서만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낭만파에서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을 희생해야만 진보파에서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달성된다는 생각한다. 또, 경찰제도, 의무 교육 제도, 복지 정책 등의 속박이 뒤따라야 자유가 달성된다고 보았다. 발달된 정치 제도의 속박이 제거되면 원시 시대의 여러 가지 어려움, 자연의 재난, 전제 군주의 횡포, 강자의 약탈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진보파는 산업 혁명, 학문의 진보, 교육의 보급 등이 모두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낭만파는 발달된 정치 제도가 없는 곳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 국가의 수립부터 시작되는 정치 제도의 예속은 인위적이기 때문에 악이라는 것이다. 낭만파는 스위스의 글라루스나 아펜젤 같은 오래 된 주의 공동체를 찬양한다. 그 곳에는 원시 민주 제도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땅에서 밀착하여 문맹으로서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정치적 주인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진보파가 예속이라고 부르는 것을 낭만파는 자유라고 부르고, 낭만파가 예속이라고 부르는 상태를 진보파는 자유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용한 명칭은 동일하나 적용한 원칙은 상반된다.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남북의 두 당사자들은 모두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했다. 어느 한쪽이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남부는 연방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난 주(州) 정부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북부는 흑인들을 노예 제도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주장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자유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만, 예속이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라는 뜻은 같다.
근대적인 의미의 '자유'는 개인이 다른 개인으로부터 혹은 권력을 가진 기관으로부터 구속을 받지 아니하는 자유의 개념에서 출발했다. 자유주의 운동 초기의 자유는 인권과 연관되어 있었다. 개인의 자유란 국가나 권력을 가진 사회 집단으로부터 제약, 간섭, 압력 따위를 받지 않는 자유를 말한다. 개인이 바라지 않는 것을 다른 개인이나 집단, 특히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권리를 말한다. 이러한 개념의 자유를 소극적 자유라고 말한다. 민주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불가결하고도 본질적인 가치 규범이기 때문에 헌법의 기본권 조항에 명시적으로 보장해 두고 있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하는 데서 민주주의 국가의 원리가 성립되는 것이며, 각 개인의 행복은 우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개인이 법에 의해서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 침해당한다면 인간다운 삶의 본질을 보장받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아 실현의 기회도, 더 나은 사회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적 자유가 집단적 자유에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초기 자유주의자들의 신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자유가 전제되어야만 보장될 수 있다. 어떠한 공동체 전체가 다른 공동체에 예속된 상태에 있다면,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없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이 바로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체와 개인의 자유는 어떤 관계인지 생각해 보자. 개인마다 각기 갖고 있는 욕망 때문에 개인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충돌을 조정하지 못한다면 개인이 자유마저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개인간의 자유를 조정해 주는 공정하고도 중립적인 정치권력의 존재가 요구된다. 즉, 질서와 규율을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역할은 국가의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각급 기관이 한다. 법은 개인 자유의 보장이 아니라 구속을 전재로 한다. 개인이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법에 따라야 하는 의무, 곧 구속이 필요한 것이다. 법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의무라는 구속력을 갖는 동시에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 혹은 국가의 이유 없는 간섭이나 강제는 원치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안전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법으로 정한 권리와 의무를 분명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유의 실체와 자유로운 사회를 정확하게 규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시대에 따라, 혹은 민족의 문화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법으로 정당하게 보장되며, 공동체의 자유와 가능한 한 마찰이 적고, 자아 실현의 기회가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지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44차 문제 우수작
사람은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아가게 되어 있는 사회적 존재이다. 사회 내에서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이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간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 양식과 규범, 언어 등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숲에 버려져 동물과 함께 생활해 온 이른바, 늑대 소년은 울부짖는 소리를 낼 뿐이며,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용변을 보는 등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동물에 가까웠다. 여기서도 나타나듯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후천적인 학습, 즉 사회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사회화는 평생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특히, 5세 전후까지의 사회화는 개인의 인격 형성이나 자아 발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미래에 담당하게 될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알맞은 행동을 미리 학습하는 예기(豫期) 사회화가 중요하다. 예기 사회화의 학습 도구가 바로 이들에게 제공되는 모형화된 사회, 즉 장난감인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병원에서는 환자의 역할을, 가정에서는 자녀의 역할밖에 경험해 보지 못한다. 그러나 모형화된 장난감을 통해 그들은 의사도 될 수 있고, 간호사도 될 수 있으며, 미래에 수행하게 될 부모로서의 역할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이들은 장난감의 사용자가 됨으로써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화의 과정이 장난감을 통한 놀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보다 자연스럽고 빠르게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사회화의 목적이 단순히 문화의 전달을 통한 사회의 존속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사회화는 틀에 박힌 규격화된 인간의 생산이 아니라, 그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의 생산, 나아가서는 인재 양성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성적 인간의 생산을 위해서는 먼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고정 관념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아직도 남자는 눈물을 보여서는 안되고,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교육하는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유년기 사회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부모들이 이런 고정 관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서 창의력과 개성은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제공되는 똑같은 교육보다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기를 살려줄 수 있는 교육이 개성적 인간의 생산에 보다 바람직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자의 소질을 찾아 계발하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의 조성이 중요하다. 기성세대들은 권위주의적 의식에서 벗어나 젊은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남과 비슷함을 미덕으로 여기던 인습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고, 남과 다른 나를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개성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개인적 특성이므로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되며, 그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 도덕적 범주 내에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늑대 소년은 분명 남과 다르지만 그것을 개성이라 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주는 난폭 운전 습관을 계발해야 할 개성으로 여길 수는 없다.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 발전한다. 단순히 문화의 학습이라는 차원을 넘어선,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사회 구성원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사회화가 진행될 때, 개인과 사회는 함께 발전해 나갈 것이다.-김 현 정(성화여고 3년)
---44차 문제 총평
44차 문제는 '사회화'를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시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시문의 필자는 '장난감'을 '완전히 사회화된 장난감'과 '창의성을 개발시켜주는 블록 쌓기 놀이'로 구분하고 있다. 완전히 사회화된 장난감에 대해서 '어른들의 세계를 충실하게 따르는' 이 장난감들이 어린이들을 '소유자나 사용자가 될 수 있을 뿐 창조자가 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반면, 블록 쌓기 놀이에 대해서는 이 장난감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며, 이런 놀이 속에서 '아이는 삶을 사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파악하여 동조하는 입장을 취한다. 여기서 우리는 44차 논술문제의 '사회화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논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는 글의 구성 요소를 정해야 한다. 문제에서 필자의 견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제시문의 내용의 핵심이 논술문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은 본론의 논지 전개를 위한 바탕이 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논지 전개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견해에 대하여 동조하는지 비판하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전 준비가 되면 풍부한 사례를 수집하여 자신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하면 된다.
44차 문제의 당선작으로는 성화여고 3학년 김현정양의 글을 우수작으로 뽑았다. 김현정양은 우선 논지를 끌어가는 문장력이 우수하다. 그리고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소재를 풍부하게 마련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여기에 보완할 점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덧붙인다. 서론에서 화제 도입과 늑대 소년을 소재로 하여 문제 제기를 한 점은 잘 되었다. 그런데 논제의 확인과 그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논제를 분명히 언급하는 것은 본론 전개 과정에서 논제로부터 벗어나는 경우를 방지하여 글의 통일성을 확보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본론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시문의 핵심 내용이 포함되었어야 했다. 이것은 논술자가 제시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과시할 기회도 되며, 본론 논지 전개의 바탕 근거 마련이 되어 논지 전개를 수월하게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점에서 '장난감의 기능을 소재로 하여 사회화 과정에서 중요한 점을 밝혀 보는 것'이 제시문의 핵심 내용임을 밝힌 다음 글을 전개시켰더라면, 김현정 양도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에 편향되었던 점을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
---46차 문제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어떠한 것일까?
다음 제시문에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입장이 함께 드러나고 있다. 이 두 가지 입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부딪히는 문제이다. 이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정당화하시오.
진(陳) 나라의 영공(靈公)이 신하의 아내와 통정(通情)을 하고 그녀의 속옷을 입고 조정에 나아가 이를 모두에게 자랑해 보이자, 신하인 설야(泄冶)가 간언을 했다가 죽임을 당했다. 100여 년 후, 이 사건에 대하여 한 제자가 공자에게 질문하였다.
"설야가 바른 말을 하여 죽임을 당한 것은 옛날 주왕(紂王)의 숙부로서 그의 폭정을 비판한 비간(比干)의 죽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를 인(仁)이라 칭하여 옳은 것인지요"
그러자 공자는 대답하였다.
"아니지. 비간과 주왕과의 관계는 혈연이기도 하고, 또 관직으로는 소사(少師)의 자리에 있었지.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까지 세찬 간언을 한 것은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주왕이 후회하기를 기다렸던 때문이야. 이는 마땅히 인(仁)이라고 해야 하지. 그러나 설야는 영공과 혈육의 관계도 아니고, 또 지위도 일개의 대부(大夫)에 불과하지 않은가? 군주가 올바르지 않고 나라가 올바르지 않으면 깨끗하게 관직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분수도 모르고 구구한 몸으로서 일국의 어지러움을 바르게 하려고 하다니. 이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버린 게야. 인(仁)은 커녕 한 소동에 불과한 것이라네"
그 제자는 공자의 그 말을 듣고 납득하여 그 자리를 물러났으나,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제자 자로(子路)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물었다.
"인(人)·불인(不人)은 둘째치고, 어쨌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국의 문란함을 바르게 하고자 한 것에는 지(智)·부지(不智)를 넘어선 훌륭함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결과야 어떻든 생명을 헛되이 한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대는 그러한 소의(小義) 속에 있는 훌륭함만을 볼 수 있고 그 이상의 것은 보지 못하는가? 옛 사대부는 나라에 질서가 있으면 충성을 다함으로써 이를 도왔으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물러남으로써 이를 피하였다네. 자네는 아직 이러한 출처진퇴(出處進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군. 시경(詩經)에 백성에게 부정한 생각이 횡행하면 스스로 법령을 지키기가 어렵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네. 생각컨대 설야의 경우에 해당되는 듯하구나"
"그러면…" 하고 자로가 상당히 오랜 시간 생각한 끝에 말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신의 안전을 꾀하는 것에 있습니까? 몸을 버려 의를 세우는 것에는 없습니까? 한 인간의 출처진퇴가 적합한지 부적합한지의 문제가 천하 창생(蒼生)의 안위보다도 더 소중한 것일까요? 왜냐하면 지금의 설야가 만약 목전의 어지러운 윤리를 비난하며 지위에서 물러났다고 하면 그의 일신은 그것으로 좋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陳(진)나라의 백성에게 그것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언하여 죽는 쪽이 국민의 기풍에 주는 영향으로 말하면 훨씬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일신의 보전만이 소중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렇다면 비간의 죽음을 인이라고 칭찬하지도 않지. 단지 도(道)를 위하여 버리는 생명도 그 버릴 때와 장소가 있는 법. 그것을 지혜롭게 헤아리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네, 서둘러 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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