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3부자의 동반퇴진 발표에 이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반발, 정주영 명예회장의 긴급진화, 다시 뒤이은 몽구 회장측의 동반퇴진 거부 발표….
'현대 3부자 경영일선 퇴진' 발표가 나온 31일 오후 서울 계동의 현대사옥은 하루종일 긴박하게 돌아갔다.
오후 2시15분 김재수 현대 구조조정위원장의 입을 빌려 발표한 정주영 명예회장의 '폭탄 선언'은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극적인 내용이었다. 계동사옥 15층 대회의실을 메웠던 현대 관계자들이나 보도진 모두 '얼이 빠질' 정도의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제가 오늘 아침에 정주영 명예회장님을 직접 뵙고 뜻을 그대로 기술하고 친필서명을 받은 내용입니다"라며 김 위원장이 입을 뗄 때만 해도 3부자의 동반퇴진을 눈치채기는 어려웠다. "각 기업이 독자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는 것만이 국제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제 오늘부터 모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또한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도 함께 모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순간 내외신 취재진 100여명을 비롯해 대회의실에 자리했던 200여명은 술렁임에 앞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표가 있자 인터넷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한 현대직원들 뿐만 아니라 현대의 자구책을 주시하던 투자자, 네티즌들도 민감한 반응을보였다. 증시는 즉각 상한가 행진으로 '보답'했다.
현대 관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역시 왕회장 답다"고 말하면서도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른 관계자는 "그러나 두 아들과 의논을 거쳐서 결정이 이뤄졌는지 의심스럽다"고 찜찜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4시를 넘어서자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측이 발표문을 통해 "전혀 협의되지 않은 사항"이라며 "자동차 소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유지될 것이며 몽구 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를 만드는데 흔들림 없이 전념하겠다"고 발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몽헌 회장이 남북경협사업을 맡았다면 30년 넘게 자동차업계에 있었던 몽구 회장도 당연히 자동차를 맡아야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를 예견이나 했던 것처럼 오후 4시20분께 정 명예회장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현대 사옥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말쑥한 양복 차림에 비서진 2명의 부축을 받으며 사옥에 들어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힘겹게 발걸음을 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정 명예회장이 15층 명예회장실로 직행하자 현대측은 즉시 15층 전체를 봉쇄,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다.
오후 4시40분. 몽구 회장이 외부에서 들어온 듯 1층 로비를 통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 명예회장실로 향했다. 쏟아지는 취재진들의 질문세례에 손을 내저으며 가벼운 미소까지 내비친 그는 바로 명예회장을 독대했다. 하루종일 행방이 묘연했던 몽헌회장도 이 자리에 동석, 3부자가 밀담을 나눴다.
오후 5시50분께 엘리베이터에서 몽구회장의 부축을 받은 명예회장이 몽헌 회장,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내렸다. 정 명예회장은 '몽구 회장이 승복했나'는 질문에 대해 "당연하지"라는 한마디로 상황이 수습됐음을 시사했다. 잘 듣지 못해 김윤규사장이 큰 소리로 질문을 전달해 줬지만 그는 오히려 "더 묻고 싶은 사람 없소"라며 취재진들에게 질문을 요구하기도 했다.
상기된 얼굴의 몽구 회장은 수용 여부를 묻는 질문공세에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3부자는 각자의 승용차에 올라 시내 모 한정식집으로 이동, 정상영 KCC회장 등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나 몽구 회장은 식사가 끝난 뒤 다시 계동사옥으로 돌아와 현대.기아차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재반격'을 준비했다. 오후 8시40분 현대차 최한영 상무는 '현대.기아차의 분명한 입장을 밝힙니다'라는 A4용지 2장짜리 발표문을 돌렸다.
최 상무는 "몽구 회장의 뜻"이라며 "현대사태는 현대투신 및 현대건설의 유동성 부족에 기인한 것이어서 현대차와는 무관하고 구조조정위의 발표는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발표된 것"이라며 '법대로'를 강조했다. 특히 "(식사도중에) 명예회장이 밝힌 원칙은 원리원칙 경영에 충실하거나 전문성에 바탕을 둔 경영을 해 나가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한다"는 해석을 내놓으며 반발의 강도를 높였다.
현대 직원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현대호'에 그칠줄 모르고 밀어닥치는 '난(亂)'에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