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황제경영'의 퇴진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과 몽구·몽헌 등 창업자 일가가 모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것은 현대사태 해결책으로선 예상밖의 결정이었다. 특히 53년간 쌓아온 '현대왕국' 아성의 왕회장이라 불리우던 정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한다는 의미는 현대그룹이 가진 한국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건설·현대상선 유동성 부족사태 등을 맞아 정부와 시장으로부터 지배구조개선 압력을 받아오면서도 이른바 '황제경영'을 고수할 것처럼 보이던 정 명예회장이 두 아들 회장까지 동반퇴진을 결심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기도 하다.

이번 정 명예회장 일가의 경영일선 후퇴와 현대계열사의 전문경영인체제, 자산 3조7천여억원의 추가매각, 신규투자축소 등의 발표는 사실상 현대사태해결책으로선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정부와 시장의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재벌경영의 핵심적 문제가 초법적 지배구조에의한 경영불투명에 있었던 것에 비추어 정씨일가의 경영일선퇴진은 우리나라에도 자본과 경영의 분리라는 전문경영인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물론 정씨일가의 갑작스런 퇴진은 현대그룹에 일시적 경영공백을 가져올 수 있고 국제경쟁력면에서 기업간의 협력부진등의 새로운 문제가 생겨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산규모 88조원이나 되는 현대가 5백억원을 못구해 좌절을 맞을 정도의 시장불신을 초래한 까닭이 전근대적 지배구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던만큼 황제경영을 청산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다. 더욱이 이같은 현대의 재벌해체적 오너체제의 개선은 이미 변화하고있는 시대적 흐름을 읽고있는 재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밖의 재벌이나 대기업들에게도 파급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런 뜻에서 이번 정씨 부자의 퇴진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정씨 일가의 현대사태수습책과 퇴진의 변을 음미해보면 아직 현대에대한 전폭적 신뢰를 하기엔 이른 느낌이 없지않다. 우선 현대자동차의 몽구회장이 동반퇴진에 반발하고 있고 정 명예회장도 "나는 뒤에 앉아서 감독만 할 것"이란 말을 남기고 있는 것은 퇴진결정이 선명하지않다. 게다가 자산 추가매각등을 발표했으나 실질적 자구노력도 만족할 수준이아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정부의 구제자금을 의식한 전략적 퇴진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보면 발표대로 실천하는 후속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행이 뒤따르지못하면 국민과 시장을 기만하는 결과가 된다. 또 실행이 된다해도 이전과는 다른 국민적 기업문화가 이를 받쳐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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