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몸 사리는 남자들

얼마전 학생들과 함께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떠났던 한 대학 교수는 씁쓰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제자들과 어울리던 '한잔 술'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뿐, 2박3일을 그냥 맨송하게 보냈다. 학생들이 저녁시간에 노래방이라도 함께 갈 것을 제의했지만 출장비로 나온 20여만원을 건네주고 자신은 술자리를 피했다. 그러잖아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추문으로 시끄러운 판에 공연히 오해를 낳을 만한 자리는 아예 가지 말자는 생각때문이었다.

정부출연기관의 대구지역 책임자인 김모(56)씨. 그는 요즘 직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 여직원 혼자 있으면 아예 타지를 않는다. 괜히 밀폐된 공간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예상치않은 낭패를 볼까 신경이 쓰여서다.

최근 전 총선연대 장원 대변인과 산업연구원 이선 원장, 대학교수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추문이 잇따르면서, 일반직장, 공직사회, 대학사회의 상하간 분위기에 변화가 일고있다.

특히 여직원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거나 평소 성희롱에 대해 무감각하던 40대 이상 중장년층 남성들은 혹시라도 실수를 저질러 구설수에 오를까봐 극도의 몸사리기에 급급하고 있다.

대구시청 한 50대 과장급 공무원은 "일부 인사들이 성추행 파문으로 한순간에 '매장'당하는 현실이 무섭다"며 "최근들어 입조심과 손조심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동료들이 많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이같은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직장내 성희롱 방지 교육 프로그램을 서둘러 준비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성희롱 교육을 단지 연 1회씩 실시해야 하는 법률적 의무사항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직원 재교육의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

'대구여성의 전화' 한 관계자는 "전보다 성희롱 예방교육용 교재를 빌려달라는 부탁이 늘고 있으며 비디오교재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李尙憲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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