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리뷰-노동
인간이 힘을 들여 물건을 운반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용하게 되자, 인간의 힘으로 노동할 때보다 훨씬 더 편해졌다. 하지만 말보다 더 편한 자동차가 등장하자,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손쉽게 처리하게 되었다. 이는 인류 문명의 발달이 일구어 낸 눈부신 성과이지만, 그것을 막연히 경탄의 눈길로만 쳐다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변화 과정에 숨겨져 있다. 계산하기 편하게 말이 사람 열 명분의 일을 한다고 하고, 트럭이 말 열 마리 분의 일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트럭 한대가 대체하는 일은 대략 사람 백 명분의 일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트럭 한 대를 생산하는 것이 사람 백 명의 일자리를 빼앗는 셈인 것이다.
이러한 공장 자동화 열기 속에서 대량 실업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잘 견뎌 냈던 것은 거기에서 생긴 잉여 인력이 정부와 행정 인력 같은 공공 부문과 여러 가지 서비스업 등으로 상당 부분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이른바 '제3차 산업 혁명' 속에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적어도 기계를 돌리는 데 필요했던 그 최소한의 인력마저 필요 없는, '사람 없는 공장'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1의 물결을 대표하는 농업 노동자가 제2의 물결을 대표하는 공장 노동자로 변신할 수는 있었지만, 이제 제3의 물결에서 공장 노동자가 다른 일자리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래 사회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노동이란 한 마디로 기계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노동이다. 기계에 의해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분야는 교사나 보모처럼 인간 교육에 관련된 분야나, 예술 창작 분야처럼 인간의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 등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그런 쪽으로의 직종 전환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우선 지적인 능력이나 연령, 비용 등을 생각할 때 그런 전문가 집단이 되기 어려운 경우에 놓여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사 직종 전환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데에 소요되는 인원은 그들이 현재 종사하는 업종의 인원과는 도저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적어서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계를 강타한 실업 사태가 일견 경제 불황 때문에 오는 일시적 현상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산업 사회가 고도로 진행되어 다음 단계로 이행되어 가는 나라에서라면 어디에서나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므로 좀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그 해결책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처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간단한 처방은 노동 시간의 단축에 의한 고용의 창출이다. 노동의 생산성이 향상된 만큼 노동 인력의 수요가 감소하므로, 노동 시간을 줄여서 현재의 수요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소비자인 노동자의 구매력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산성 향상 부분만큼의 임금 상승을 보장받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분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협의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은, 국가에서 적절한 재원을 마련하여 사회 봉사나 여러 가지 지역 협의체 등과 같은 제3의 부문에서 흡수하는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여전히 미봉책이므로 미래형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늘리려는 장기적인 대책과 노력이 필요하다.
---46차 문제총평
46차 문제는 '현대사회의 맥락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 삶의 방식 모색'을 주요 논제로 제시하였다. 이번 과제는 제시문의 분석을 통한 논제의 정확한 파악, 문제의 요구 조건의 충실한 이행에 성패가 좌우되는 전형적인 형태의 논술문제이다. 먼저, 제시문에 나타나는 삶의 방식을 분석, 이해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 정당성을 뒷받침할 방안을 구사한다. 이때 반드시 현대사회의 맥락을 고려하여 문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제시문은 동일한 상황에 대하여 대응하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두고 그 정당성을 논의하는 내용이다. 어느 쪽이나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확보한 주장이다. 따라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논술자가 파악하는 현대사회의 맥락과 논술자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어떠한가에 달린 것이다. 이점에서 논술자는 그의 사회 현상에 대한 안목을 과시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펼쳐나가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46차 문제의 당선작 선정에는 일선 고교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 매일 논술의 논제로 학생들의 작품을 받은 후 꼼꼼하게 예심을 하여 상당한 수준의 작품만을 선정하여 응모하게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응모작들의 수준도 상당하여 이번에는 덕원고등학교 3학년 한주헌 군과 대구고등학교 3학년 함병훈 군의 글 두 편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하고, 덕원고 3년 김동현, 송민구, 대구고 3년 권준태, 박원규, 강병우 군의 작품을 우수작으로 선정하였다.
한주헌 군의 글은 화제 도입에서부터 논제 접근의 과정이 논리적으로 잘 전개되었다. 그리고 제시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논지의 바탕을 튼튼하게 마련하여 자신의 주장을 선명하게 전개한 점이 잘 되었다. 다만, 결론에서 주장을 구체적 내용으로 주제문을 제시하지 않고 "설야의 행동에서 배울 수 있다"로 그쳐버린 점이 아쉽다. 함병훈 군의 글은 논지의 방향을 선명하게 잡아 일관성 있게 주제로 달려가는 능력이 돋보인다. 특히 자신의 견해와 상충되는 쪽의 주장의 근거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논지 전개 방식은 눈여겨 볼만한 것이다.
---46차문제 최우수작(1)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나가면서 살아왔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 구성원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아 문제에 직면하였을 경우 자신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와 일신의 안전보다는 정의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태도의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특히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맥락과 관련하여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제시문에서 통치자의 비행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죽임을 당한 설야의 행동에 대해서 공자와 그의 제자 자로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공자는 자신과 문제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설야를 비판한다. 즉, 공자는 문제에 직면할 경우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이전에 자신의 지위와 입장을 고려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반해서 자로는 그러한 사실들을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여 올바른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공자의 삶의 방식은 소위 헛된 노력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자신의 안전을 위하고 노력의 결과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다고 생각될 경우 문제 자체를 외면해버리고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자로의 삶의 방식은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에만 매달려 무리를 범할 수 있다.
자신의 안전과 지위를 고려한 다음 그것에 따라서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자신과 직접적 관계가 없고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정의를 위해서 노력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개인이 겪을 수 있는 문제이다. 제시문에 나타난 두 가지 삶의 방식 중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로의 삶의 방식에 좀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주의의 팽배로 인해서 현대인들은 자신과 직접적 이해 관계가 없는 일에는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도 자신의 안전과 이해관계를 떠나서 문제를 올바르게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을 막음으로써 그 사회의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비록 한 개인의 참여가 사회의 부조리를 완전히 고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있는 사회가 더 희망적임은 자명하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옳은 일을 실천했던 설야의 행동은 현대인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삶의 방식은 설야의 행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한주헌(덕원고 3년)
---46차문제 최우수작(2)
인간이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사회는 끊임없는 변화를 겪어 왔다. 그 변화는 대개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 즉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현대 사회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풍요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 사이에 수많은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도 개인의 신념이 사회와 충돌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뜻하는 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신념을 포기하고 그대로의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제시문에서는 '영공(靈公)'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부조리에 설야라는 개인이 대항하여 자신을 희생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공자는 이러한 설야의 희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신을 보전하고자 의(義)를 저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설야의 행동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경솔한 행동이며 결국 괜한 목숨만 잃게 되었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다. 이에 반해 자로는 비록 설야의 희생이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그가 몸을 버리고 의를 택한 것은 그 자체로 용기 있고 훌륭한 행동으로 본다. 자로는 결국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서 굴하지 않는 개인의 신념 있는 행동을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제시된 두 가지 의견 중 공자의 생각은 인간의 목숨이 소중하다고 한 점에서 타당성이 있다. 또한 개인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 상황에서의 희생은 훌륭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희생하기에 '적절한 상황'이란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자도 '적절한 상황'의 요건으로 개인의 신분과 지위를 들고 있다. 그리고 만약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아무런 발전이 없이 제자리걸음만을 되풀이할 것이다. 모두가 적절한 상황이 아니라는 핑계로 사회적 모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과연 누가 잘못된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일신의 보전을 추구하고 신념을 포기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모습이 결코 아니다. 또한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자세 역시 제대로 된 시민의식을 갖춘 이들의 자세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도 끝까지 저항해서 마침내 자신을 희생하고 마는, 그런 용기 있는 개인이 있어야만 사회의 발전이 가능하다. 사회를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꾸어 가는 것은 시민 모두의 할 일이지만,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원동력이 되는 것은 개개인의 굴하지 않는 신념과 그에 따른 용기 있는 희생이라는 사실을 현대를 사는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함병훈(대구고 3년)
---48차문제
'패거리'를 해체하기 위한 방안은?
우리 사회의 고질 중 하나가 '패거리'이다. 제시문 (가)는 "'패거리'가 비합리적 감성·정서로 뭉치는 집단"으로 "사회적 역기능을 미칠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나)는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서론의 일부로 '패거리'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를 시사해 준다. 사회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이 '패거리'를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미래는 그만큼 더 밝아질 것이다. 다음 제시문들을 참고하여 '패거리'의 폐해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지적하고, '패거리'의 해체 당위성과 해체 방안을 나름대로 논술하시오.
(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동창회를 만든다. 오래된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 학교시절을 되돌아보는 훈훈한 모임이 동창회다. 그런데 몇 해 전 각 대학교의 동창회 간부들의 모임인 동창회 연합회라는 게 생겼다. 무엇을 하는 모임인지 모른다.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각 동창회회원들의 관심이 가는 일도 아닌, 그저 '패거리'를 짓는 것뿐이다.
우리는 패거리를 짓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패거리를 짓지 않으면 무력감을 느끼는 것일까. 패거리를 지으면 신문에 사진이 나서 우쭐해지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 주변엔 이름 붙은 패거리가 너무 많다.
건전한 공동체의식과 그 건전한 의식을 바탕으로 한 조직이 아닌, 그저 뭉쳐본 패거리, 그것은 사회적 활력을 발휘하기보다 불필요한 사회적 분화(分化)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중략〉
사회조직의 이론으로 볼 때 패거리는 인포멀 그룹(informal group)이다. 인포멀 그룹은 비합리적인 감정과 정서로 뭉쳐지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그 결합은 내면적이고 잠재적이다. 그 구성원 사이에는 그들에게만 독특한 행위양식과 사고방식, 그들 나름의 질서가 있게 된다.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면 사회적으로 역기능을 미칠 위험이 생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 개개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이해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해 관계도 고려하며, 또한 때에 따라서는 행위의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더욱 존중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도덕적이다. 그들은 본성상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고려를 척도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경우 동류 의식을 느끼는 범위는 사회 교육에 의해 얼마든지 확장된다. 그들은 이성적 능력을 통해 정의감을 키워간다. 이 정의감은 교육적 훈련에 의해 세련되고, 그 결과 자신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사회적 상황을 공정한 객관성의 척도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이기주의적인 요소들을 정화(淨化)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과들은 인간 사회와 사회 집단들에서는-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개인들에 비해 훨씬 획득되기 어렵다.
모든 인간 집단은 개인과 비교할 때 충동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때에 따라 억제할 수 있는 이성과 자기 극복의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이 훨씬 결여되어 있다. 게다가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개인적 관계에서 보여주는 것에 비해 훨씬 심한 이기주의가 모든 집단에서 나타난다.
집단의 도덕이 이처럼 개인의 도덕에 비해 열등한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자연적 충동들-사회는 이 자연적 충동들에 의해 응집력을 갖는다-에 버금갈 만한 합리적인 사회 세력을 형성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며, 또한 오직 개인들의 이기적인 충동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적 충동 때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개인들의 이기적 충동은 개별적으로 나타날 때보다는 하나의 공통된 충동으로 결합되어 나타날 때 더욱 생생하게 그리고 더욱 누적되어 표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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