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고삐 풀린 사치소비

조조의 자손으로부터 나라를 뺏어 서진(西晋)을 창립한 무제 사마염은 즉위 초에는 검소하고 어진 정사를 펼쳤으나, 점점 사치와 방종에 빠져 나라인구 1천600만명 중 1만명을 후궁으로 두었다. 왕이 이렇자 귀족들도 다투어 사치와 부의 경쟁을 벌였는데, 특히 석숭과 왕개의 사치싸움은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타락상이었다. 이렇게 부패한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은 무제의 아들 혜제 사마충이었다. 궁중에서 사치의 도가니에 빠져있던 그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 죽는다는 말을 듣고 "쌀이 없으면 고기라도 먹지, 왜 죽는데?"라고 답하였다. 서진은 사마충의 재위기간 중에 망하였다.

성경에 나타난 소돔과 고모라는 향락과 사치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였다. 그러나 두 성은 불과 유황의 세례를 받고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과 땅에 난 모든 것들이 다 불타 멸하여 졌다. 요즈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부근에서 발견된 또다른 두 도시의 유물 중 풍요의 여신이었다는 이시스상을 보면 "돌로써 어떻게 여자의 나체 위에 그렇게 얇은 옷을 입힐 수 있었는가"감탄케 한다. 사치와 향락이 극치로 발전하지 않고서는 그런 나체의 신상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도시는 지진으로 폐허화되어 물에 잠겨 버렸다.

얼마전 한 인터넷 도시락 주문판매 전문 몰에서는 한끼 도시락을 100만원에 판매한다는 전단을 웹사이트에 올렸었다. 첫날 하루만에 수십건의 예약이 쇄도했고, 그 후에도 하루 평균 문의전화가 50통 이상에 달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 예약자 대부분이 20, 30대 초반이라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귀족 소비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쇼핑몰의 출현은 백화점, 유명 고급 브랜드사를 중심으로 치열한 날개 달기 가격경쟁을 하고 있다. 3천만원짜리 중국차, 88만원짜리 파티용 구두, 한 장에 6천원하는 명함, 심지어는 30만원짜리 수박 등 일상생활의 물품에도 하나 둘씩 귀족 마케팅이 손을 뻗치고 있다.

한국의 GNP가 최고조에 달했던 1996년에도 1인당 GNP는 1만달러로 세계에서 28위였다. 1998년의 1인당 소득은 6천800달러로 세계에서 42위, 전세계에 180여개국가 중 한국땅 덩치만한 나라가 60여개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생각보다 못사는 나라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사치에 빠질 수 있는가.

사실 소비는 경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소비는 생산을 유도하는 주요 원동력이며, 유통·금융업에도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외환위기를 견뎌내면서 우리는 무조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상책이 아님도 알았다. 소비의 미덕을 통해 미국은 작년에 2천억달러 이상의 '부(富)의 생산효과'를 누린 반면 일본은 아껴쓰고 저축만 하다보니 소비부진으로 최악의 경제침체에 빠졌었다.

한국의 문제는 지각없는 사람들이 나 보란듯이 쓰는 풍조 외에도 더욱 심각한 것은 쓰고 있는 돈이 우리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외채는 대기업의 해외지사 차입, 은행의 해외지점 차입 등 잡기에 따라 1천500억 내지 2천억달러 수준 가까이 간다. 1천500억달러로만 잡고 외채 이자율을 7.5% 잡으면 1년 이자만도 110여억 달러, 98년의 경우 아무리 적게 잡아도 경제성장의 3.5% 이상의 과실이 외채이자로 빠져나갔다. 앞으로 한국의 적정성장률이 7%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이자만 갚다가 원금은 몇 십년이 걸려야 갚을 수 있을는지 답답하다. 우리가 쓰고 있는 돈이 외채 뿐인가? 외채 외에 증권시장에 들어온 외국돈이 640억달러, 98년 한국의 GNP가 3천200억달러인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GNP에 육박하는 외국 돈으로 우리는 그렇게 잘 쓰고 있는 것이다. 외채가 한 해 237억달러나 증가했던 96년, 우리는 80억달러어치의 음식물을 수입하고서 음식물 쓰레기가 1천600억원어치 발생하였다고 난리를 쳤다.

한국의 이러한 사치소비는 '소득격차에 의한 사회균열 현상'을 야기시켜 사회 안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 1분기 동안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의 지니계수가 0.325로 79년 이후 가장 빈부격차가 심했던 작년의 0.320수준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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