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워크피아-5만여 노동자 갈곳이 없다

다음달 1일부터 상당수 파견노동자들이 2년간의 근무를 끝내고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 김모(37)씨는 "2년동안 일하며 어느정도 업무에 자신감도 생겼는데 이제와서 나가라니 답답하다"며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숨지었다.

지난 98년 7월1일 IMF의 위기극복을 위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갖춰 실업률을 낮춰야한다는 명분아래 '파견근로자보호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현재 '파견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촉진하고 무분별한 파견근로의 확산을 방지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법 제정취지는 무색해지고 있다.

올해 비정규직 문제가 노사간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비정규직의 한 축을 이루는 파견노동자의 계약만료가 다음달로 다가와 해고와 배치전환 등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이젠 고용불안을 부추기고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파견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고 나아가 정규직을 임금이 낮고 해고가 쉬운 파견노동자로 대체하는 추세를 막기위해 이 법을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기업경영 합리화차원에서 파견노동자들을 고용한뒤 임시직·계약직으로 재고용하거나 아예 계약만료를 통해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다.▨현황과 실태

노동부에 따르면 6월 현재 전국 1천244개 업체가 노동자파견업체로 지정돼 있으며 파견노동자 5만3천218명이 6천488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사업장내 하청노동자 절반이상이 불법파견노동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때 전국 80만명 가량이 파견노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대구·경북지역의 경우 96개 파견업체가 노동자를 파견, 1천207명이 144개 사업장에 고용돼 있는 것으로 대구지방노동청은 추산하고 있다. 이와함께 서울 등 타지역에 본사를 두고 대구·경북지역에서 파견사업을 하고 있는 업체가 46개로 480여명의 노동자를 사업장에 파견하고 있어 전체 파견노동자는 1천600여명에 이른다.지역에서 이달말 2년 계약이 만료되는 파견노동자는 134명이나 지난 98년7월 이후 파견노동자 고용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왔기때문에 계약만료 대상 노동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역의 경우 SK텔레콤이 170명의 파견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평화산업(달성군 논공읍) 100명 가량, 농협 경북본부 및 대구본부가 각각 17명과 13명, 세림아이텍(중구 하서동) 13명, (주)갑을(서구 비산동) 15명, 한전KDN(서구 이현동) 52명을 각각 고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농협 경북본부와 대구본부 각각 15명과 9명, 세림아이텍 12명, (주)갑을 11명, 한전KDN 11명 등이 이달말 계약만료된다.

▨문제점

파견노동자들은 계약만료후 해당 사업장이 정규직이나 임시·계약직으로 재고용하지 않는 이상 일자리를 잃게 돼 있다.

이같은 고용불안은 △애매한 파견기간 규정조항 △등록형·모집형 파견근로 성횡△중간관리비 과다계상 △사내하청, 시설관리, 판촉사원 등 불법위장 파견 △파견사업장 배치전환 등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파견근로자보호법에서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핵심은 '사용주가 2년을 초과해 계속적으로 파견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한 날의 다음날부터 파견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2조의 항목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파견노동자가 소속된 사업장이 파견업체를 바꾸거나 기존업체 대신 다른 업체 사람을 고용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삼을 여지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파견노동자를 고용한 업체들이 2년 계약이 만료되는 파견직을 본인 의사에 따라 계약직 또는 임시직으로 채용할 수 있다. 때문에 대구지방노동청 조사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에서 2년 계약이 만료되는 파견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려는 업체는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노동의 대다수가 등록형과 모집형에 치우친 점도 고용불안의 한 요소.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파견업체가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면서 사용사업주의 요청이 있으면 파견하는 '상용형 파견노동'을 실시하고 있으나 국내의 경우 사업주 요청이 있을때 일시적으로 파견하는 등록형, 모집형 파견노동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이같은 유형의 파견노동이 근로기준법8조에 위배되고 파견근로자보호법 21조 '균등대우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일부 파견업체들이 파견노동자 사용업체들과 계약을 맺은뒤 중간관리비를 과다하게 챙기는 바람에 파견노동자들이 턱없이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함께 일부 사업장이 법상 파견노동을 할 수 없는 제조업 사내하청, 시설관리, 유통업 판촉사원, 위장노무 도급노동자 등을 통해 불법파견을 일삼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같은 불법파견은 법제정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고 심각한 고용불안요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견사업장 배치전환'은 파견노동을 실시하고 있는 사업장이 노동자에 대한 임금 및 노동통제를 쉽게하는 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사업장의 경우 2년 근속 파견노동자의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같은 직종의 다른 회사로 서로 맞바꿔 배치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노동계 대응

노동부는 현재 파견업체 현황외에 실제 파견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파견근로자보호법 시행된지 2년이 임박하자 이제서야 부랴부랴 현황파악에 나섰다.

대구지방노동청의 경우 최근 사업장별로 공문을 보내 파견노동자 수를 파악하는 한편 계약만료된 파견노동자를 곧바로 계약해지 하지않고 최소한 임시직·계약직으로 재고용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구남부지방노동사무소의 경우 파견사업장의 실태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해 현재 관할 지역에서 몇명의 노동자가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한국노총은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해고가 속출하고 있다"며 "파견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해고와 배치전환을 중단하고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또 "제조업 사내하청노동자, 유통업 판촉사원, 시설관리노동자, 위장노무도급노동자 등 불법파견이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정부가 불법파견 및 위장노무 도급실태를 철저히 파악해 규제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도 파견근로대책과 관련해 △노동청의 계약해지업체 특별감독 △파견업체 중간착취 배제 △불법 위장파견근무 철회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파견업체 및 파견노동자 교환은 물론 사내하청, 병원간호업무 등의 불법파견근무도 성횡하고 있다"며 "파견노동자를 모두 정규직화하고 근본적으로 고용불안을 부추기는 파견근로자보호법을 폐지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金炳九기자 kb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