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북정상회담 성사되기까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는 몇번의 고비가 있었다.

4.13 총선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 4월10일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과 박재규 통일부장관의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된 분단 이후 남북정상간의 첫 만남은 이후 다섯 차례의 준비접촉과 선발대 파견, 회담연기 등의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다. 회담성사의 최대 고비는 준비접촉 과정에서 북측이 우리 측 취재단의 규모를 40명선으로 줄여달라고 요구한 것과 북측의 갑작스런 회담연기 통보였다.

▲특사접촉=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접촉은 지난 3월9일 김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북측이 접촉의사를 표명하는 등 반응을 보이면서 시작됐다. 우리 측의 박 문화관광장관과 북측의 송호경 조선 아시아.태평양 평화위 부위원장을 특사로 하는 비공식접촉이 3월17일 중국의 상하이에서 이뤄졌다. 이어 3월22일과 4월7일 세 차례 접촉을 가진 양측 특사는 4월8일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합의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준비접촉=지난 4월22일부터 판문점내 평화의 집과 통일각을 오가면서 가진 다섯차례의 준비접촉에서는 취재단 규모가 최대 걸림돌이었다. 양측 대표단은 3차 접촉에서 합의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다가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난항을 겪었다.

4차 접촉 이후 80명 정도의 취재단을 고집하던 우리 측이 결국 북측의 요구를 수용함에 따라 5월18일 열린 5차 접촉에서 대표단의 규모와 구성, 의제 등 15개항의 실무절차 합의서를 타결짓는데 성공했다.

▲선발대 파견=준비접촉에 나섰던 손인교 남북회담 사무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선발대는 5월 31일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들어갔다. 경호, 의전, 통신, 보도 등 실무자 중심으로 구성된 선발대는 김 대통령 일행의 평양체류 일정과 판문점 실무자 접촉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사안을 북측과 집중 논의했다.

▲회담연기=회담성사의 최대고비는 북측이 지난 10일 전언통지문을 통해 회담을 하루 연기하자는 입장을 알려왔을 때였다. '기술적인 준비가 덜 됐다'며 연기를 통지해오자 정부는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55년을 기다려온 남북정상회담인데 하루를 더 못기다리겠느냐"는 김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여 수락했다.

徐明秀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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