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에도 격식이 있다. 두 손을 부여잡은 것은 엄밀히 악수의 격식은 아니다. 그런데 어제 남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남과 북을 상징하는 두 최고위층은 평양 순안 공항에서 두 손을 감싸듯 맞잡았다.
55년만의 만남이었다. 55년은 분단 시작 당시 태어난 사람의 초등학교 때 6.25를, 중학교때 4.19와 5.16을, 대학생 때 전태일을 듣고 직장인이 되어 일한 기간이다. 그 사람이 결혼해서 아기 낳고 그 아기가 자라서 다시 아기를 낳기도 했다. 이 긴 시간동안 청년이었던 내 아버님은 북에 부모를 두고 내려와 살았다. 기댈 곳 없는 객지에서 노인이 된 당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모가 돌아가시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했다. 그리고 어제 종일 TV앞에 계셨다.
그동안 남과 북은 서로 많이도 상처내고 아파했다. 어제 대통령이 내린 순안 공항은 전쟁때 국군 포로들이 동원되어 보수했다고 한다. 그 일을 할 때 유엔군의 폭격으로 많은 군인이 죽었다고도 한다. 순안 공항에 대통령의 발이 닿은 것과 같이 내 발이 닿았으면 하고 바라는 이도 많았을 것이다. 반대로 저 손을 저렇게 잡을 수는 없다고 외치고 싶은 사람은 또 왜 없었겠는가?
이 만남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실마리라고들 한다. 이제 우리는 그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를 찾았다. 55년동안 엉킨 엄청난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서로가 더 인내하고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사열대 앞을 지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다리 저는 모습이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그 저는 다리가 있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면, 마주잡은 손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더 큰 인내와 희생이 지속적으로 요청됨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은 일부터 차례로 풀어 나가야 한다."여성이 너를 구원하리라"라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는 여성적 존재, 모성적 존재가 우리 민족을 구원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모성은 상호간의 증오와 아픔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루만져 준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줄 수도 있다. 그러면, 상대방이 나처럼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벗어나 대화할 상대를 눈앞에 직시하게 될 것이다.
모성의 자애로움은 창조의 상징이다. 여성의 부드러움은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을 낳는다. 그동안 남성지향적 우리 역사는 서로 강건해지려고 노력했다. 우리 문화에 내재되어 있던 여성적 문화요소를 간과해 왔다. 이제는 우리 역사에서 이 여성적 요소를 되살리려는 남성적 결단이 요청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를 배격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상대와 서로 같이사는 지혜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 민족문화가 간직해 왔던 화해의 전통, 상생(相生)의 철학으로 다시 나아가야 한다.
"부엌에 가면 며느리가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가 옳다"는 말이 있다. 실상을 알려면 이 둘을 함께 만나서 정리해야 한다. 남과 북은 역사 전통을 함께 한 한겨레이다. 서로의 반쪽에 불과한 남과 북이 함께 만날 때 완전한 하나가 이루어 진다. 남북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진면목을 알고 완전해 질 수 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나도 내 아버지가 꼬마시절 다니던 길을 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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