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머리를 맞대고-학교 평가부터 바꾸자

최근 불거진 '교사 저작권 소송' 파문은 사설학원의 각급 학교 기출문제 임의 사용에 제동을 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교육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담고 있다. 바로 학교 평가의 의미와 방법에 관한 것이다.

현재 중·고교에서 실시하는 중간·기말고사는 상당 부분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2개월여 수업한 내용에 그치는 좁은 시험범위, 정형화되고 특색 없는 주·객관식 문제 유형, 내신성적 산정을 위한 줄세우기식 성적처리 등 자체적인 한계부터 불거진다.

어찌 보면 생존을 위해 학생 모으기에 급급한 사설학원들이 교사들의 평가 권리를 침해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교사든 학생이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도록 강요하는 현재 교육환경에서는 이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출제할 문제가 없다

중간·기말고사를 치르고 나면 학교 안팎은 언제나 시끄럽다. 학생들 사이에 어느 과목은 언제 기출문제가 출제됐다느니, 어느 참고서에서 나왔다느니, 어느 학원 예상문제지가 족집게라느니…. 전직 교사인 학부모 이모(여)씨는 "아이가 수성구 모중학교에 다니는데 중간고사 가정 문제를 보니 지난해 문제와 완전히 꼭같았다"면서 "이런 무성의한 교사 때문에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사실 완전히 또는 대부분 베끼는 교사도 있다. 매년 학교마다 재시험 소동도 일어난다. 일부이긴 하지만 교사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 있다는 지적도 외면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학교 시험 문제 가운데 상당 부분은 마음 먹고 찾아보면 거의 걸린다는게 교사들의 항변이다. 예년 기출문제부터 참고서, 문제집, 학습지 등 자료들을 모아놓고 보면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태반이다. 설문 내용만 조금 다르거나 문제의 숫자를 살짝 바꾼 것도 적지 않다.

교사들이 게으른 탓일까. 교재연구와 문제출제에 무성의한 탓일까.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시험기간만 되면 문제출제 때문에 홍역을 치른다. 교육과정은 5년마다 더디게 바뀌는데, 문제집 회사는 수십명의 연구진을 동원해 출제 가능한 모든 유형의 문제를 제시해 놓은 상태. 학습목표와 교과서를 기초로 문제를 출제하려면 아무리 고심을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입시위주 교육구조가 문제

한편으로 교사들은 독창적인 문제, 사설학원들이 단순 베끼기로 따라올 수 없는 문제를 출제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정형화된 출제를 강요하는 현실이 문제라는 것.

학습목표를 확장, 교과서 범위 밖에서 출제하면 당장 소동이 일어난다. "시험이 어렵다"는 학생들의 불평과 "문제의 객관성이 없다"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는 것이다. 이를 우려하는 교장이나 간부들도 출제문제를 결재하면서 "교과서 내에서 가급적 쉽게 내라"고 요구하는 일이 몸에 배었다.

능인중 임전수 교사의 지적.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양과 질보다 점수와 성적에 연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입시위주의 획일화된 성적 지상주의가 부르는 부작용이지요. 이는 결국 우리 교육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고질화된 병폐입니다"

우선 학교성적을 잘 받고 보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욕심이 교사들을 위축시키고, 사설학원들은 이를 이용함으로써 사교육이 공교육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교육환경 개선과 극복노력이 전제

결과보다는 과정을 평가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왜 외국처럼 학생 개개인에게 수준에 맞는 별도의 과제물을 내주고 다르게 평가하는 방법을 채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리 있는 얘기다.

이 배경에서 지난해부터 시작된 것이 수행평가다. 결과보다는 학습과정 전반을 평가하자는 취지이니 입에 꼭 맞는 방법인 것이다. 전체 평가에서 수행평가의 비중을 확대하면 문제해결은 쉽지 않겠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들은 '아니올시다'하며 손을 내젓는다.

교사 1명이 최소 150명에서 400명 이상까지 담당하는 중·고교의 현실에서는 개개인의 학습과정을 세밀하고 공정하게 평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껍데기만 갖춘 꼴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일그러진 구조 탓만 하고 이끌려가서는 학교교육의 위상을 되찾기가 요원하다는 비판도 많다. 한 고교 수학 교사는 "학원들의 기출문제 활용을 막는 일도 중요하지만 교사들 스스로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채점에도 보다 신경을 써서 출제하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이야 늘어나겠지만 학생들에게 해답이 도출된 원리나 과정을 문제지에 쓰게 만들고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졌느냐를 평가하게 되면 아무리 문제유형이 비슷해도 학생들의 지식축적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다른 고교 교사는 "수십년간 학교 시험이 계속돼 왔지만 여기에 대해 교육청 단위의 토론·연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면서 "공교육 살리기를 위한 교육계 자체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金在璥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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