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남쪽의 탐색전

중국 춘추시대의 우화(寓話)에서 나온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성어가 새삼스럽다. 2박3일간의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너무나 충격적으로 전해오는 평양소식이 방송.신문에서 연일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마치 통일이 곧 되기라도 하는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듯하다. 평양냉면집이 북새통을 이루고 북한 말씨가 벌써부터 젊은층으로부터 유행하기 시작하는 등 이른바 '북한'이 '남한속'에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이런 모티브는 베일에 가렸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어 놓은 파격적인데서 비롯된것이 아닐까 싶다. 평양 순안공항에서부터 보여준 그의 태도는 차분하고 단아한 모습의 김 대통령과 대조를 이루면서 오히려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다면서 김 대통령을 예우하며 잠자리, 식반찬걱정까지 하는 세심한 면이 있는가 하면 모션을 크게 쓰면서 거침없이 '탈북자'까지 거론하는 자유분방한 언행은 분명 그의 속에 자리잡고 있는 '두 모습'의 구현이었다.

그에 비해 김 대통령은 뭔가 긴장이 덜 풀린듯한 모습이 TV화면을 통해 역력하게 느껴졌다. 물론 손님이자 연장자의 입장인 점을 감안해도 뭔가, 조심스럽고 말을 아끼는 수동적인 자세로 보였다. 말하자면 남쪽은 뭔가 탐색을 계속하는 모습이었고 북쪽은 이미 탐색전을 끝내고 이쪽의 반응이 어떤지를 지켜보는 듯한 유연함과 소탈함까지 보여주는듯한 인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김 대통령에게 백두산에 오를 것을 권유하다 갑자기 "'내가 한라산을 먼저 올라가 본 후에…"라는 코멘트도 서울초청에 당연히 응한다는 걸 은연중에 내비친 것으로 들린다. 또 그건 우리는 이렇게 대접을 후하게 했으니 이젠 그쪽에서 우리쪽에 어떤 대접을 하느냐를 지켜보겠다는 사인으로도 보여진다.

그래서 그의 서울답방은 그들이 내심 절실하게 여기는 경협(經協)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통일이 곧 닥치는게 아니라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건 우리의 준비가 그만큼 적었다는 것과도 맞물려 있다는 걸 이번 회담은 보여줬다. 그래서 '우공이산'이란 교훈이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든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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