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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리뷰-문학과 사회

문학 작품이 독자에게 단순히 정서적인 영향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소설 속의 베르테르를 이상으로 삼아서 연애를 한다면, 문학 작품이 한 사람의 사랑, 더 나아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문학의 영향력은 좁게는 개인에게, 넓게는 사회에까지 작용한다.

개인과 사회, 혹은 행위와 구조에 대한 사회 이론적 논쟁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사회는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사회는 개인과 개인이 규칙적인 방향으로 상호 작용하여 형성하는 하나의 집합적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사회 구조가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와 행위를 구속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작가 개인도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사회적 출신과 가정 환경 및 학교 교육을 통해 당대의 사회 제도나 관습,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작가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체험한 사회적 경험을 작품에 담기 때문에, 문학 작품은 사회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사회 제도가 개인의 행위를 강제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나"라는 개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화폐제도는 존재해 있었고, 내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화폐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사회 제도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활동을 구속하고 그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뒤르켐이 주장하는 대로 사회제도, 사회 구조라는 것이 물리적 세계처럼 명백히 외재하여 개인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일까? 사회는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 체계로서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사회성을 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폐 사용도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이 사회제도에 단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님을 말해준다. 어떤 특정한 화폐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원 개개인들이 결정할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개인의 행동은 사회 구조에 강제되기도 하지만, 그 구조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개인과 사회 구조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관계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나 동의에 의존하는 상호작용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정치, 법, 문학, 예술 등의 사회 제도들이 경제적 토대에 의해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면서도, 사회제도와 경제적 토대의 상호작용의 관계가 존재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즉,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요소도 하부 경제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마르크스는 셰익스피어의 문학과 그리스의 고대 예술이 현대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정신적 산물은 하부 구조에서 비롯된 시대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졌음을 밝힌 바 있다.

현상의 부분만을 강조하여 전체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현상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과장할 수 있다. 그래서 경제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이론은 경제 결정론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17세기에 파스칼도 부분과 전체를 연결하여 사물이나 사회 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부분을 무시하거나,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어떤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부분을 모르고 전체를 안다고 하는 것이나, 전체를 아는데 부분을 모른다는 것은 우스꽝스런 사고 방식이라는 것이다.

창작 활동도 하나의 사회적 활동이다. 작가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사회적 경험을 한다. 작가는 당대의 사회제도나 관습,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과 순수한 공상만을 담은 허구가 아니다. 그러나 작가의 꿈이나 상상력을 통해 사회적 사실들이 작품에 표현된다. 이와 같이 작품은 작가의 순수한 내면적 세계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사실들이 상상력이란 굴절을 통해 표현된 것이다.

흔히 작가를 기타 사회 구성원들과는 다른, 예외적인 존재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작가도 사회적 존재로서 특정한 사회적 출신 배경을 갖고 가정 및 학교에서의 성장 과정을 거쳐,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갖고 이러한 것들에 영향을 받게 되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같은 사람이다. 다만, 작가는 당대의 사회 상황을 민감하게 인지하고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당대 사회의 관습, 규범, 가치관 등을 문학의 형식, 장르, 문체 등을 통하여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작가이다. 따라서, 작품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이 사회를 반영한다고 해도, 작품이 그 시대와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료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 표현된 사회 현실은 작가의 상상력과 비유, 풍자, 아이러니 등의 기법을 통하여 변형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학과 사회는 개인과 사회 구조의 일반적인 관계와 같이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설사 문학 자체의 순수함만으로 작품이 창작되었다 하더라도, 작가가 현실과 삶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작품은 여전히 사회적이다. 또 반대로 사회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일지라도, 그 안에는 작가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숨쉬고 있다. 이런 점에서 훌륭한 문학 작품이란, 자연적 존재로서의 작가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작가가 내는 목소리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47차문제 최우수작

국경선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 세계는 개방화되고 있다. 이러한 무한 경쟁의 시대에는 개성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 다양한 문화들 속에서 자기만의 색깔이 없이 남의 것을 따라만 하려는 사람은 남들과 다른 개성이 없다. 다시 말해 자기만의 특색을 찾아 그것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을 때에 개인이든 국가든 무한 경쟁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개방화의 대조류에 당당히 맞서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1)벌벌 떨고 있는 실정이니 그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개화기를 시작으로 일부 지식인들의 주도하에 근대적 개방화가 이루어졌다. 이광수는 이들 개화파 중 대표적 작가로 "무정"에서 문화적 계몽주의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그의 계몽주의에는 문제가 있다. 그가 현실 모순을 타파하여 서구화하자는 의식 속에는 우리 고유의 문화적 기반은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다는 민족적 열등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열등 의식은 우리 것을 내버려 둔 채 남의 것만을 쫓는 사대적 근대화를 낳게 되었다.

적극적 서구문물의 도입으로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발전하였고, 그 결과 경제적,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기존의 방책으로는 경쟁력이 없게 되었다. 남의 것을 쫓는데도 한계가 있어, 수용하는 것 이상의 더 나은 기술 개발을 할 수 없을 뿐더러 고유의 전통 문화마저도 주체적으로 계승, 발전시키지 못한 결과, 오늘날 우리 문화는 어느 축에도 속하지 못한 채 어중간한 상태에 있다. 이러다가는 문화의 존재성마저 위협받게 된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 속에는 우리 조상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오면서 축적된 지혜가 깃들이어 있다. 또 그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나 자신이 한국인인 것에 긍지를 가지게 하기도 한다. 고유의 우리 전통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리 민족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곧 세계 시장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개성적인 유산이다.

나아가 우리 것의 위대함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우리끼리만 알고 있다면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 손해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까지 잃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태만하게 대응한다면 자칫 우리의 것을 빼앗기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 예로 김치를 일본에서 "기무치"로 이름하여 우리보다 앞서 세계 시장에 내놓아 자기 나라 것임을 주장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우리 것에 소홀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것을 남의 잣대에 비추어 깎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단지 그 과학성의 여부만을 중시하여, 장구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던 전래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3)그 예로 민간 신앙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역사를 석기 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엄연히 존재하는 민족 사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적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미신으로 치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무조건 우리 것만을 고수하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곧 문화적 보편성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화적 보편성은 문화의 비교 우위에서 인정받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것이라고 무조건 열등하다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서양식으로 맞추자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를 남에게 맞추기보다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편리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아가 우리 것 가운데서도 세계 시장에서 더 나은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세계 시장에서 우리 고유의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는 세계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도 될 것이다. -조 연 경(정화여고 3학년)

---47차 문제 총평

이번 논술 문제는 무한 경쟁 시대에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논술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무엇을 쓸 것인지 방향을 제한하기 위해 읽기 자료를 제시했다. 이광수와 황종국의 글로 전자의 것은 민족적 열등의식의 식민사관이 반영된 것이고 후자의 것은 민족적 자긍심이 넘치는 글이었다. 학생들이 논술을 쓸 때에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다른 한 쪽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쓸 수도 있고 둘 다를 비판하면서 제 3의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이번 논술에서는 정화여고 3학년 조연경 학생의 글을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학생의 글은 대체로 잘 쓴 편이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1)의 경우는 감정이 들어간 표현이 되었다. 이를 "위축되어 있으니" 정도로 개념화하여 표현하는 것이 더 낫다. 본론의 다섯 번째 단락은 글의 구성상 없는 것이 더 짜임새가 있다. 학생이 분량이 모자라서 쓴 것 같다. (2)의 경우는 구체성이 없다. 구체적 예시를 제시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설득력을 갖는다.

이외의 몇 몇 학생들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지연 학생의 경우는 본론의 첫 단락에서 논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학생들이 범하는 좋지 못한 논술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렇게 쓰면 본격적인 논의를 할 형식 분량이 적다. 구체적 논의를 할 수 없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된다. 신재경 학생의 경우는 본론의 첫단락이 문단의 구성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문단의 주제문이 없다. 문단은 주제문과 상술로 이루어진다. 성화여고 3학년 김지영 학생의 경우는 서론이 너무 장황하다. 서론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밝혀 전체 글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학생이 쓴 서론은 세계화 시대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되어 있다. 이런 내용을 쓸려면 한 문장 정도로 짧게 써야 한다.

---49차문제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래의 두 제시문 중 가)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이고 나)는 하근찬의 "수난이대"이다. 가)의 주인공 "나"는 끝없이 회의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는 행동력이 없으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은 지 그른 지를 늘 회의한다. 반성적 삶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물의 행동은 추진력이 없으나 양심에 바탕을 두려고 노력한다. 반면에 나)에 나오는 만도와 진수 부자는 자신들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세상을 탓하면서도 이를 수용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이런 인물들의 행위는 적극적 추진력은 있으나 반성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유형의 인물들이 가지는 성격을 비교해 보고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반대편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바람직한 이유를 논술하시오.

가) 나는 어머니에 의해서 골방에 처박혀졌고 의용군의 징발도 그 후 국군의 징병도 모두 기피해 버리고 있었었다. 내가 졸업한 무진의 중학교의 상급반 학생들이 무명지(無名指)에 붕대를 감고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을 부르며 읍 광장에 서 있는 트럭으로 행진해 가서 그 트럭에 올라타고 일선으로 떠날 때도 나는 골방 속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의 행진이 집 앞으로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대학이 강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을 때도 나는 무진의 골방 속에 숨어 있었다. 이웃집 젊은이의 전사 통지가 오면 어머니는 내가 무사한 것을 기뻐했고, 이따금 일선의 친구에게서 군사 우편이 오기라도 하면 나 몰래 그것을 찢어 버리곤 하였었다. 내가 골방보다는 전선을 택하고 싶어해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에 쓴 나의 일기장들은, 그 후에 태워 버려서 지금은 없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을 웃으며 견디는 내용들이었다. "어머니 혹시 제가 지금 미친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원인들 때문일 테니 그 점에 유의하셔서 저를 치료해 보십시오……" 이러한 일기를 쓰던 때를, 이른 아침 역구내에서 본 미친 여자가 내 앞으로 끌어당겨 주었던 것이다. 나) 개천 둑에 이르렀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그 시냇물인 것이다. 진수는 딱 걱정이 되었다. 물은 그렇게 깊은 것 같지 않지만, 밑바닥이 모래흙이어서 지팡이를 짚고 건너가기가 만만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진수는 하는 수 없이 둑에 퍼지고 앉아서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만도는 잠시 멀뚱히 서서 아들의 하는 양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진수야, 그만두고 자 업자" 하는 것이었다.

"업고 건느면 일이 다 되는 것 아니가? 자아 이거 받아라"

고등어 묶음을 진수 앞으로 민다.

진수는 퍽 난처해하면서 못이기는 듯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만도는 등어리를 아들 앞에 갖다 대고 하나밖에 없는 팔을 뒤로 버쩍 내밀며,

"자아 어서!"

진수는 고등어와 지팡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어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혔다. 만도는 팔뚝을 뒤로 돌려서 아들의 하나뿐인 다리를 꼭 안았다. 그리고 "팔로 내 목을 감아야 될 끼다"하는 것이었다. 진수는 무척 황송한 듯 한쪽 눈을 찍 감으면서 고등어와 지팡이를 든 두 팔로 아버지의 굵은 목줄기를 부둥켜안았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하였다.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만도는 속으로 "인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타고나서 진수 니 신세도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섬겼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으면 나았을 낀데……"

하고 중얼거렸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앞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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