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창가에서-정상회담과 군방의무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일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 만나 뜨겁게 손을 잡았다. 이 역사의 현장은 TV를 통해 병상에 누워있는 참전용사와 휴전선을 지키는 국군에게 동시에 전달됐다. 감동과 흥분이 컸던 만큼 혼란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남북의 정상이 만남으로써 예상되는 변화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안보환경이다. 휴전선에서는 여전히 총부리를 맞대고 있지만 역사는 이제 화해 무드속에 국방의 의무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전 한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군대생활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마침 참석자 대부분은 아들이 현재 군 복무 중이거나 입대를 앞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이 지금의 군대가 엄청 변했다고 이야기하자 다른 사람이 현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아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국방, 몸으로 때우는 시대 지났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20, 30년 자신들의 군대생활로 옮겨갔다. 군생활 3년은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당시 지구상에는 김일성보다 더 나쁜 악마는 없었으며 군대의 모든 존재이유는 김일성을 쳐부수는 것이었다. 이 명제 앞에는 어떤 '미션 임파서블'도, 부당한 지시도 있을 수가 없었다. 잠자다가도 김일성이라면 무조건 벌떡 일어나 주먹을 내질렀던 시절이었다.

"군 3년이 아니었다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젊은이들도 나왔다. 군생활 3년의 상대적 박탈감은 제대이후 예비군훈련 등 사회생활을 하는동안 내내 따라다녔다. TV 프로그램 '신고합니다'가 보여주는 군생활 추억담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이 있었는지를 예비역들은 알고있다.

이런 이유때문에 군에 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젊은이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유전면제(有錢免除)니 '어둠의 자식들'이니 하는 말이 유행했고, 못나서 현역으로 입대한다는 비아냥이 공공연했다. 이런 병역문제는 지난 4월 총선 당시 후보자 검증에서도 잘 드러났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데는 상대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도 원인(遠因)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었다. 지금도 검군 병무비리 합동수사본부가 수사를 벌이는 등 시대가 바뀌어도 병무비리 사건은 끊이지 않고있다. 병무비리는 국민의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국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까지 만들고 있다.

##정신력, 지적능력으로도 봉사 가능

1990년,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대를 중동에 파병하려 했을 때 언론들은 "모든 사람이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위험에 동등하게 노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존 케네스 갈브레이드는 뉴욕타임스에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돼 위험에 직면한 젊은이들은 미국의 가난한 가정 출신이다"고 지적하며 "부유층 젊은이들에게 군복무 기회를 줘서 이 사회가 많은 수입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만을 위험에 빠지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북정상이 만났다. 이젠 국군의 존재 이유도, 국방의 개념도 새로 정립해야 할 때다. 이번 정상회담을 우리의 징병 문제를 전면 재검토하는 전기로 만들어야 한다. 군의 정예화와 전문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면서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는 국방의 의무, 모두가 일정 기간을 국가에 봉사하는 그런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누구나, 그리고 동등하게

대구지방병무청은 "징병검사를 받는 젊은이들의 85%가 군대에 간다"고 말했다. 거꾸로 얘기하면 현역을 비롯 전경과 상근예비역, 산업체 기능요원 등이 모두 포함하더라도 15%는 면제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더이상 국방의 의무를 체력으로만 해결하는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모든 국민이 일정한 기간을 정신력으로든 지적 능력으로든 국방의 의무에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균등히 보장해줘야 한다. 아울러 현역 근무자에게는 그만한 반대급부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화해와 공존의 시대에도 현역 군인들을 휴전선 철책에 여전히 보초 세울 수가 있을 것이다. TV 프로그램에 추억이나 만들려고 군에 입대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 6월은 6.25와 현충일을 가진 보훈의 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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