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타 전 총리는 시마네(島根) 현의회 의원을 거쳐 58년 중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14선을 기록했다. 그는 87년 7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총리와 결별, '게세카이(經世會)'(다케시타파)를 출범한 뒤 그해 11월 총리에 취임했다.
89년 6월까지 1년반 가량 재임하는 동안 논란이 많았던 소비세를 도입하는 등 업적을 남겼다. 리크루트사의 헌금 의혹 사건으로 퇴진한 뒤에도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등 후임내각의 탄생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자민당 주류의 맥을 잇고 있는 최대 파벌인 오부치파의 사실상 오너로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오부치 전총리의 총리 선출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등 '킹 메이커'로 군림해왔다.
또한 한일의원연맹의 일본측 회장을 맡아 양국간의 우호증진에도 크게 기여해왔으며, 한국내에 박태준(朴泰俊) 전총리 등 와세다(早稻田)대 동문 등을 중심으로 많은 인맥을 갖고 있다.
은퇴후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였던 다케시타 전총리의 서거로 자민당 오부치파의 향후 진로는 물론 오부치파의 지지로 탄생한 모리 요시로(森喜朗)정권의 앞날에도 미묘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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