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모처럼 만에 웃었다.
갈라지고 터진 기둥들, 세월을 이고 있는 기와들, 사랑채, 정자, 연못…. 안동시 와룡면 오천 군자리. 지난 17일 이곳에서 집의 신들을 위한 굿, 성주풀이가 열렸다.
누구 말대로 마치 고가(古家)의 모델하우스촌 같은 군자리. 광산(光山) 김씨 예안파가 21대째 세거해 온 곳. 그러나 지난 74년 안동댐 건설로 2km 떨어진 이곳에 이건(移建) 하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됐다. 그곳에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성주의 본향이 어드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레라. 제비원의 솜씨를 받아 오천 군자리로 던졌더니…" 신명나는 성주풀이 한마당이 펼쳐졌다.
안동시청에서 도산서원으로 15㎞. 공연 시작 7시를 앞두고 이미 국도변은 차들로 빼곡이 들어찼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쇠 이광수의 구성진 소리로 시작된 성주풀이는 날이 어두워지면서 열기를 더했다. 판소리 명창 이명희씨의 '흥보가'를 비롯해 태평무 이귀선, 전주대사습놀이 대상 수상자인 김경애씨, 솔뫼무용단의 공연으로 이어지면서 집과 사람이 하나로 아우러지는 자리가 됐다.
87년 6월항쟁때 이한열을 보냈던 서울대 이애주교수의 살풀이춤도 다시 보였다. 통상 달착지근한 인형극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 안동대 겸임교수 양혜경씨가 보여준 전통 각시놀이는 인상적이었다.
국가문화재인 탁청정 연못 건너 잔디밭을 주무대로 주위의 고가에서 돌아가면서 공연이 이뤄졌다. 순서에 따라 무대가 바뀌다 보니 신명나는 공연에 "앵콜!"이 빗발쳤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움.
역시 압권은 '괴짜 피아니스트' 임동창씨의 무대. '쟁이골 사람들'의 사물놀이를 뒷음으로 펼친 임씨의, 새가 모이 쪼아먹듯 찍어대는 피아노음은 우리 옛음과 서양음의 절묘함을 보여주었다. 사물놀이패에게 "깨작거리지 말고 신나게 쳐, 응?"이라는 주문을 엿들어서 그런지,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들은 레퍼토리지만 이날 따라 더욱 신이 났다.
임씨는 이명희, 이애주씨를 불러내 '카츄샤'등 '뽕짝'을 부르게 하는 등 뒷풀이를 진행했다.
그래서 좋은 것은 초여름 밤을 신명나게 보낸 관객들. 그러나 더 좋았던 것은 유물로만 남아있던 군자리 고가들이다. 집이라고 한(恨)이 없을까. 이날은 집들을 위한 잔치였다. 집들은 좋았겠다.
金重基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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