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외국의 많은 지인(知人)들은 '박정희 스트래터지(strategy: 전략)의 성공'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1960년대 이래 김일성과 벌인 박정희의 산업화전략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남북정상회담은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설혹 있다해도 대등한 입장에서의 정상회담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1972년까지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잘 살았다. 1인당 GNP(국민총생산)에서 북한이 남한을 능가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전력.수도 등 오늘날 소위 말하는 인프라를 비롯 제반 기간산업에서 북한이 월등 앞서 있었다. 그때까지도 남한은 춘궁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보릿고개가 봄이 오면 늘 엄습해서 인구의 상당수가 겨울나기가 무섭게 밥을 굶었다.
대학생 수도 우선 그 절대 수에서 북한이 더 많았다. 남한 인구가 언제나 북한의 2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급인력의 배출에서 남한이 얼마나 뒤져있었나를 생각할 수 있다. 80년도를 넘어서서 대학생 수가 겨우 북한을 앞서고, 전체적으로 사는 형편이 북한보다 나아지는 것도 이즈음에 와서였다. 그렇다면 박정희 산업화전략이 결실을 거두기 시작한 것도 지난 20년 사이다.
이 20년사이 남한은 1인당 GNP에서 북한을 10배이상 앞섰다. 실제로는 20배이상으로 추정한다. 말이 열배고 스무배지, 경제력에서 열배.스무배는 엄청난 추월이고 엄청난 간격이다. 이 추월, 이 간격 없이도 오늘날과 같은 정상회담이 가능했을까. 그 추월, 그 간격 없이도 대북 경협을 말하고 평화를 부르짖을 수 있을까.
그러나 정작 이제부터의 남북한 경쟁은 경제력 경쟁, 국방력 경쟁이 아니라 이를 초월하는 차원에서의 경쟁이다. 박정희 스트래터지를 훨씬 넘어서는 경쟁이다. 바로 도덕경쟁이다.
자본주의 경제발전과정에서 예외없이 수반되는 도덕적 부패를 우리는 지난 40년간 처절히 경험했다. 어느날 아침 겨우 허리를 펴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도덕이 무너져 있었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다. 우리는 지금 그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도덕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은 지금 미국이나 서구.일본 젊은이보다 너무 부정직하고 너무 방일(放逸)하다. 너무 부패에 물들어 있고, 너무 내실이 없다. 그들 젊은이는 우리 젊은이들과는 달리 개인주의적이면서 질서정연하고, 자유분방하면서 예의바르다. 훨씬 도덕적이고 훨씬 인간적이다. 사회를 위해 봉사할 줄 알고 이웃을 위해 베풀줄 안다.
북한도 개방해서 경제성장을 하기 무섭게 으레 발전도상국들이 그러하듯 부패하기 시작할 것이다. 돈을 알기 시작하면서 도덕이 무너지는 것은 북한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아무리 국가권력으로 감시해도 돈을 가진 자부터 먼저 부패시키는 것이 경제발전이다. 남한은 일찌감치 부패를 경험했고, 북한에 비해 너무 일찍 비도덕.비윤리의 값을 치렀다. 이제 대오각성할 때도 됐다. 후진적 경제발전에서 앞서듯이 후진적 도덕발전에서도 얼마든 앞설 수 있다. 선진국은 경제력에 도덕성이 수반될 때 비로소 선진사회가 된다.
국가간 경쟁에서 경제력이나 국방력 경쟁은 하위의 경쟁이다. 진정한 의미의 경쟁, 상위의 경쟁은 도덕경쟁이다. 오늘날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경제력보다는 오히려 도덕적으로 선진국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밝히듯 선진국사회는 도덕적으로 모두 후진국사회보다 훨씬 투명하다. 맑은 사회, 그것이 선진국 사회다. 신라가 어떻게 3국 통일을 했을까. 3국 중 가장 후진국이고,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3국통일을 한 주원인은 무엇인가. 다산 정약용의 백제론.고구려론에 의하면 도덕경쟁에서 신라가 두 나라를 이긴 것으로 돼있다. 백제와 고구려는 너무 부패해 있었기 때문에 적이 쳐들어와도 '온 국민이 보기만 하고 구하려 하지 않고(四方觀望而不救)', '온 고을이 머뭇거리기만 하고 진격하지 않아(列郡두留而不進)' 결국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남북경쟁은 이제 경제경쟁,군사경쟁이 아니라 도덕경쟁이다.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앞서느냐가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를 결정한다.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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