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료개혁 무엇이 문제인가 2

대구시 두류동에서 약국을 하는 전모(55)씨는 의약분업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기존 약국 문을 닫고 동료 2명과 대형약국을 열었지만 도무지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인근 병의원의 처방약 종류와 수량을 알지 못해 어떤 약을 얼마만큼 갖춰야 할지 정확히 파악치 못하고 있다. 지금은 의약분업 시행 자체까지 불투명해진 상황.

주변에선 "어차피 의약분업이 안될텐데 약국에 투자했다가 자칫 평생 번 재산만 탕진할 것"이라고 충고하는 사람까지 있다. 그래서 그는 기자에게 "진짜 이번에는 의약분업하는 거냐"고 되묻고 나섰을 지경이다.

정부가 약속한 의약분업 시행일은 7월1일. 열흘 남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병원 처방약을 제대로 갖춘 약국은 거의 없다. 의사들이 처방약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은데다 이를 조정해야 할 정부 조차 실질적인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 그래서 의료계의 집단 휴폐업 사태가 해결돼도 의약분업 정착은 '산 넘어 산'이란게 의사와 약사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모 제약회사가 작성한 '의약분업 시행 직후 예상되는 혼란 시나리오'라는게 있다. 이것에 따르면 7월1일 의사가 써 준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은 사람들이 약사로부터 듣는 첫 말은 "그 약 없는데요!"

약국에서 의사 처방이 있어야 팔 수 있는 전문의약품은 2천500여 가지. 이 약품을 모두 갖춘 약국은 전무하다. 대구약사회 관계자는 "제약업체와 도매업체들이 의약분업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결과, 주문 받고도 처방약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약국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자 식품의약품 안전청이 처방약 공급을 위해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의사 처방약 공급과 배송 책임을 맡고 있는 의약품 제조.유통 업체를 대상으로 차질없이 공급이 이뤄지도록 강력한 행정지도를 펴기로 한 것. 그러나 의약분업 시행 전 약국들이 병원 처방약을 제대로 갖출 수 있으리라 믿는 약사는 거의 없다.

약국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병의원으로부터 어떤 처방전이 나올지 알수가 없다. 의료보험 연합회와 지방 자치단체로부터 받은 다빈도 처방약 리스트에 따라 약을 준비하고 있지만, 특이한 처방에는 속수무책이다. 대구약사회 석광철 홍보위원장은 "대부분 동네 의원은 오리지널 약이나 지금까지 자주 쓰지 않던 약을 처방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럴 땐 약을 바로 지어주지 못할 경우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각 보건소 단위로 운영될 의약분업 협력회의. 의사, 약사, 시민단체 대표가 만나 의약분업을 공동으로 준비하고 추진하는 기구이다. 그러나 이것도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의료계 불참으로 실질적인 협력회의가 열린 적은 단 한차례도 없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원인으로는 정부의 탁상행정식 일 추진이 가장 크게 지적되고 있다. 분업 시행 목표일을 정해 놓고 강행 하려고만 했을 뿐, 국민적 합의에 바탕한 일 추진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도 관련 법안만 통과시켰지 한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 그동안 단 한차례도 의약분업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적이 없다. 의사들이 집단 반발해도 불만이 무엇인지 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 같은 나라였다면, 당연히 청문회가 잇따라 열리는 등 국회가 문제 융합의 장이 됐을 것이다.

녹색소비자연대 정현수 사무국장은 "정부의 탁상행정식 추진과 국회의 직무유기가 만든 합작품 때문에 국민이 그 폐해를 고스란히 뒤집어 쓰야 하는 일이 이번에도 또 재연됐다"고 개탄했다. 李鍾均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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