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훌리건의 난동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과격응원꾼들을 '훌리건(HOOLIGAN)'이라 불리워진 동기를 보면 다소 엉뚱스럽다. 원래 이 말의 어원은 축구와는 하등 상관없는 단순히 거리에서 패싸움을 일삼는 깡패나 폭력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훌리건'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여러가지 설(說)이 있으나 영국 런던에서 악명이 높았던 아일랜드 출신의 'HOULIHAN'이라는 불량배 이름에서 따왔다는 게 정설로 알려지고 있다.

이 말이 축구와 인연을 맺게된건 60년대초 축구종주국 영국에서 축구팬들의 응원이 점차 과격해지고 교통수단의 발달로 원정응원단 '붐'까지 일면서 홈팬과 원정팬들끼리의 충돌이 잦고 끝내 경기장안팎의 난동으로 비화되면서 언론에서 명명(命名)한 것이다. 사실 이 '훌리건'들은 처음엔 관중들의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특히 그 내막에는 2차대전 영국의 적대국이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선 관중들의 '전쟁의 한(恨)'까지 그속에 녹아들어 은연중에 가벼운 폭력은 오히려 박수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대리만족'을 영국관중들은 누리려 했던 것이다. 또 거기엔 극구성향의 백인 우월주의도 배어있다. 흑인 등 유색인 선수들에게 훌리건들은 관중들의 묵시적 성원아래 노골적으로 '영국국기에 검은색은 없으니 검둥이들은 꺼져라'는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더욱이 초창기 훌리건들은 거의 블루칼라들로 구성, 소외되는 사회적 반감을 경기장 폭력으로 발산하게 됐다. 이런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된 훌리건들이 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바뀐건 64년 페루와 아르헨티나간의 경기장 난동으로 300여명이 사망하는 대참사 이후부터이다. '불치의 병'으로 진단된 이 훌리건의 패해는 영국에서 독일, 이태리 심지어 중남미까지 확산되면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간에는 축구전쟁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지금 지구촌 저쪽 유럽대륙을 열광케하는 '유로 축구 2000'에서도 역시 잉글랜드의 훌리건들이 지난 19일 잉글랜드가 숙적 독일에 승리하면서 벨기에 시가지를 불태우고 난동을 부려 경찰과 시가전을 치른 것이다. 이로 인해 급기야 유럽축구연맹은 영국축구팀의 출전권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고 이에 영국 내무성은 난동 훌리건에겐 축구관람을 영구히 못하게 하겠다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해야할 우리도 경계대상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유럽은 '즐기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지만 우리는 '민족의 생존'에 이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사활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나서도 해결은 커녕 환자들만 죽어가고 있다. 참으로 참담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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