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가 지나면 민선 2기도 후반기로 들어갑니다. 초대 3년을 거쳤으니 대구시정을 맡으신지 어느덧 반십년이 흘러간 셈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적지않은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님 개인으로는 50고개를 지나 이순(耳順)의 언덕을 내려가는 세월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노을 비낀 이순의 언덕은 공자도 원숙해져 세상에 절로 귀기울였다는, 그런 경지에 접어든다지요.
정말 시간은 빠른 것 같습니다. 지방자치의 출범을 알리는 우렁찬 팡파르속에 초대 민선 시장의 포부와 의욕을 천명하시던 육성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데, 그 새 5년이 지나갔다니 말입니다. 그 때 취임 일성으로 역설하신, '시민들이 뭉치지 못한다면 대구의 장래는 없다'는 대목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했었지요. 그러면서 '오늘날 대구가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분열과 대립 때문'이라고 목청을 높이셨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정확한 현실인식이라고 박수를 보냈더랬습니다.
그리고 5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에 시장께서는 민선 단체장의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이 지경의 대구'를 바꿔놓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셨습니다. 당신께서 꿈꾸는, 화합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살림살이에 윤기가 도는 평화로운 도시를 이룩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오늘의 대구가 시장께서 그토록 그리는 모습에 가까워져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대구사회가 더 어지러워졌다는 소리들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대구가 이대로 늙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대구가 지난 95년부터 전입 인구 보다 전출이 더 늘었습니다. 5년 연속 그런 현상은 처음입니다. 공교롭게도 시장님의 재임기간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지방자치시대의 인구이동 현상을 '발 투표'(Voting with feet)라고 설명하더군요. 말하자면 지방자치시대에는 주민들이 살기좋은 지역을 찾아 이주하는 것을 통해 자연스레 단체장에 대한 평가를 하는 셈이라는 가설입니다.
대구사회에 언제부터인가 '오피니언 빌더'들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이 보기어려워졌다고들 합니다. 대구경제가 골병이 들고, 시민들이 기력을 잃어가도 말입니다. 그 대신 시장님의 호통과 훈시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듣기 민망한 소리들이 시중에 무성하다고 합니다.
일전에 어느 사석에서 40대 교수가 흥분하던 모습은 그같은 풍문을 확인하게 하는 것 같아 씁쓸했더랬습니다. 외국에서 자연생태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대구시청의 요청으로 시장님 앞에서 브리핑을 하고는 몹시 속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그 교수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정책결정자는 다양한 의견에 귀를 열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금도를 지녀야 한다. 전문가의 의견조차 무시하려드는 지도자는 독선과 독단일 뿐이다'. 그 순간 머리속에는 시장께서 문화계 원로들을 모신 무슨 자문회의를 일장 훈시로 끝냈다는 일화가 겹쳐졌습니다. 물론 250만 시민의 수장답게 준절히 예를 다하셨겠지만 원로들의 표정은 언짢았다는 후문이 돌았더랬습니다.
누구에게나 특정한 개성은 있기 마련이고, 분별없이 그것을 공론화해 시비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도자의 퍼스낼리티는 다중을 상대로 또는 공적 행위로 표출하기 쉽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고 또 평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시장께서 감정을 다스르기 힘들 때도 적지않을 것이라는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일 때문에 답답한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닐 것이며, 오로지 대구를 부흥시키겠다는 충정을 몰라주고 따라주지않을 때는 맥이 풀릴 것입니다.
그러하더라도 세상은 지금 화해와 화합의 대기류가 출렁이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혁들이 그 아름다운 명분에도 대부분 좌절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우군의 확보를 경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경험들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시장께서 그토록 노심초사하시는 대구경제의 회생을 위해 산업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흩어진 대구사회의 '민심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 역시 절실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남은 2년, 모쪼록 지도자의 주요 덕목인 통합의 기능을 발휘하시길 앙망해 마지않습니다.
무례한 점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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