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규모 학교 교사들의 생활수기

△영주 문수초등교사

언제나 학교에 도착하면 8시 30분쯤이다. 시간표를 확인하고 아이들에 나누어 줄 학습지를 복사한다. 5월초까지만 해도 여러 책을 참고로 해 직접 학습지를 만들었는데 요새는 부끄럽게도 다른 책을 그대로 복사하는 경우가 많다. 복사가 끝난 후 오늘 보낼 공문을 점검해 본다. 4시까지의 수업이 끝나면 바로 작성해서 보내야 하는 공문이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공문이 너무 많이 온다. 오늘 보낼 공문 또한 지난 번에 보낸 것과 비슷하다. 중등에서는 분교조차도 행정실이 따로 있다는데 초등학교에서는 6학급조차도 행정실이 없다. 그러다 보니 교실에 있어야 하는 선생님이 학교경리와 서무 등 행정 사항을 도맡아 수업중에도 교무실에서 잡무를 보는 경우를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학교 아저씨중에 한 분이 사무 보조원의 직책으로 임명은 되었지만 늘 손에 못과 망치를 들고 다니는 아저씨가 전문 행정업무를 본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경험해 보지 않았던 행정업무이기에 선생님들도 많이 힘들어 한다. 일의 양도 만만치 않다. 교사가 잡무에 파묻힌 사이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예천 감천초등 교사

본교 6학급, 분교장이 2개 있는 면소재지 학교서 6학년을 맡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슈퍼우먼이다. 아니 슈퍼우먼이라야 한다. 평소 출근시간은 보통 8시 30분 이전이다. 출근하면 아이들과 아침청소를 시작한다. 9시에 직원협의(일주일에 2회), 잠시 후 아침 조회(일주일에 2회)를 하고 나면 1교시 수업. 쉬는 시간에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해본 적이 거의 없다. 매일 해주는 일기 지도, 다음 시간 학습 준비 등을 하다보면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 점심시간. 오후 수업에 필요한 학습지나 자료를 만든 뒤 점심을 먹고 나면 금방 또 수업이다. 공문 처리는 주로 오후에 한다. 올해는 연구, 도서, 저축을 맡아서 건수가 조금 줄었지만 지난해는 체육, 생활, 과학, 청소년을 맡아서 오후 대부분을 공문처리로 보냈다. 그나마 시일을 조금 주고 보내는 보고공문은 집에 가서라도 해오면 되지만 어떤 것은 아침에 보내면서 오전 중으로 보고하라는 것도 있다. 꼼짝없이 아이들을 자습시키고 공문처리에 매달려야 한다. 수업을 마치면 보충지도도 하고 다음날 수업 준비도 해야하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지금 작은 학교에는 아이들의 교육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업무를 처리해 줄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영주 옥대초등 교사

3월에 발령을 받아 교직생활 이제 겨우 4개월째다. 짧은 기간 동안 교직생활에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실망감과 답답함을 먼저 느끼게 돼 서글프다. 가장 힘든 점은 도무지 수업을 조직하고 연구하는 데 집중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잡다한 공문처리이다. 지금 학교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재산, 비품 관계 일이다. 업무를 배정받고 열어본 캐비넷에는 재산 대장이며 비품대장이 줄을 지어 꽂혀 있었다. 너무 생소한 내용들이라 그동안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5월초 국·공유 재산 가격 개정에 대한 공문을 받아들고는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했다. 5년마다 시행하는 일로 학교의 모든 재산을 현 시세에 맞추는 작업이었다. 학교부지, 건물, 나무, 기물 등을 공식을 적용해 산출하는 작업이 대부분이었는데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지침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하면 된다는데 이해하기가 천리길 가기였다. 시커멓고 두꺼운 재산 대장을 끌어안고 엑셀 프로그램 앞에 앉아 있던 그 몇 주 동안은 뒷골이 묵직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과의 생활과 수업은 내가 집중해야 할 중심이 아니었다. 이런 생활은 교사로서 내가 생각했던 삶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발령 첫날의 꿈은 점점 잊혀져 간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